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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가장 우울한 나라? 한국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4.02.15. 03:00

일러스트=이철원


마크 맨슨·대니얼 튜더 “韓, 유교·자본주의의 부정적 결합”
영미권이 생각 못한 유교의 가장 큰 특성은 최상급 능력주의
반지성주의·음모론 그들이 더해… 우리 관점서 새 대화 필요

마크 맨슨이라는 미국 자기 계발 작가가 올린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는 영상이 화제다. 맨슨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는 유교와 자본주의의 부정적 결합으로 탄생했다. 가족과 집단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유교 문화는 낮은 성취에 수치심을 부여하고 엄청난 사회적 압박을 준다. 여기에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기 위한 끝없는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결합했고, 한국인들은 그 어떤 나라보다 혹독한 경쟁에 시달린다. 이를 완화하려면 유교의 장점인 가족과 공동체의 친밀감 혹은 자본주의의 장점인 개인주의가 필요한데,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유교는 개인주의를 억압한다. 한국인에게 탈출구란 없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분석이다. 하지만 그의 관찰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3년 한국에서 출간한 영국 기자 대니얼 튜더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도 이미 맨슨의 관찰과 거의 흡사한 한국 사회 분석이 담겨 있다. 그도 역시나 유교적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임을 지적한다. 한국인이 겪는 불행은 역사적 고난에 직면해 생존하고자 달려와야 했던 급격한 성장의 부작용이고, 지금은 불행할지라도 한국인들은 그간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었으니 불행이라는 지금의 고난도 이겨낼 것이라는 ‘덕담’도 비슷하다.

두 작가는 아마 영미권의 일반적 시선으로 한국을 보아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들의 직관이 꽤 설득력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부자로서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집단주의와 의무를 강조하는 유교 문화가 문제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물론 집단주의와 의무는 유교의 강한 특성이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도 집단주의적이고 의무를 강조한다. 집단주의와 의무를 칭송하다 세계대전까지 일으킨, 오늘날 서구 선진국의 대표 국가 독일은 어떤가. 집단주의와 의무는 유교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전통 윤리의 일반적 특성이다.

영미권 논자들이 간과하는 유교의 특성은 엄청난 수준의 능력주의다. 과거제 전통은 표준화된 능력 평가 시스템에서 이루는 성공을 부와 권력은 물론이고 도덕적 성취와도 결부했다. 고도의 능력주의 시스템에서는 능력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이는 부와 권력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사회적 발언권도 갖기 어렵다. 가족이나 집단에 대한 의무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최근의 청년 세대도 성취 압박이 굉장히 심한 것은 유교의 집단주의보다는 능력주의의 이면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라면 서구는 어떠한가? 서구 또한 능력주의에 따른 사회적 균열이 팽배해짐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확산에 따른 집단적 비교 심리로 불행감도 커지지 않는가? 오히려 유교적 지성주의와 ‘교화’ 관념이 희박한 미국에서는 반지성주의와 음모론이 한국보다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 의사당 점거 소동까지 일지 않았는가?

‘외부인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당신들이나 잘하라’고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 간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타자에 대해 논평하고, 우리는 그들의 논평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권력 불균형은 다른 문제다. 이 불균형을 푸는 데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의 관점과 언어로 돌아보는 일이다. 그 뒤에 그들의 관찰이 왜 부족한지 알려주고, 그들 사회의 문제도 우리 관점과 언어로 분석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어야만 한다.

유교와 자본주의의 부정적 결합’이라는 내용을 담은 튜더의 책이 나온 지 10년이 더 지났다. 그 사이 한국은 더욱 불행해진 것 같지만, 서구의 위기도 심화되었고 한류는 세계로 나아갔다. 10년 전 논의를 반복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10년 뒤에는, 2013년이나 2024년에 이루어진 영미권의 관찰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유교는 무엇인지, 자본주의는 무엇인지, 한국 시각으로 논하며 그들과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2/15/UVRXNPKGXZGSHGT5WR3OYW2B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