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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철중의 생로병사] 인간에게 꼬리는 없다? 아니, 감추고 있을 뿐이다

김철중 기자
입력 2024.03.05. 03:00 업데이트 2024.03.05. 04:29

몸 안으로 들어와 퇴화한 꼬리, 골반 부위 다양한 근육과 힘줄 잡아줘
앉을 때 몸의 무게도 지탱… 다치면 걷기 불편하고 사회활동 줄어
몸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 사소한 것도 세심하게 챙겨야 건강 유지

일러스트=이철원


사회 활동이 왕성한 50대 남성이 신경외과 진료실을 찾았다. 살짝 엉덩방아를 찧어 엉치 끝을 다쳤는데 통증이 너무 오래간다는 거였다. 척추뼈 맨 아래, 이른바 꼬리뼈 부분에 타박상을 입은 것이다. 이후 일상생활이 불편했다. 뭔가를 집으려고 허리를 앞으로 숙일 때마다 ‘꼬리’가 몹시 아팠다. 좌우로 몸을 기울이며 계단을 오를 때도 꼬리가 아렸다. 그러면서 즐기던 등산 횟수가 줄었다. 이 남성은 새롭게 깨달았다고 한다. 인간의 꼬리는 여전히 그 나름대로 일하고 있었다고. 겪어봐야 느끼고, 당해봐야 안다고, 인간의 꼬리는 없는 게 아니라 꼬리를 감추고 있었던 게다.

사람의 꼬리는 미골(尾骨)이라는 부위다. 영어로는 새 부리와 닮았다고 해서 ‘콕식스(coccyx)’라고 부른다. 꼬리는 해부학적으로 엉치뼈 맨 아래 척추 끝자락에 뼈 분절 3~5개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 꼬리가 몸 안으로 들어와서 퇴화한 것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 결과다. 유인원 시절까지 꼬리는 꽤 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두 발로 직립보행하면서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 역할이 시들해졌다. 뛰어다니는 데 꼬리가 되레 거추장스러워졌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했던 기아(饑餓) 시대, 서서 움직여야 하는 사람에게 에너지 효율은 매우 중요했다. 꼬리뼈 관절과 근육을 움직이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들었다. 그러기에 꼬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부위로 인식됐다. 결국 꼬리 짧은 인간이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면서 꼬리는 진화론적으로 종적을 감춘다.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꼬리를 잃는 대신, 자유로운 양손을 가지면서 문명을 이룬다.

하지만 꼬리는 분명 남아 있다. 임신 초기 태아에게 꼬리가 형성되지만 곧 사라진다. 이는 인간 꼬리가 있었고, 진화 과정에서 줄어들었다는 증거로 쓰인다. 인간 꼬리 연구로 저명한 일본 교토대 도지마 사야카(투고 당시 오사카시립대 소속) 교수가 3년 전 대한신경외과학회지에 쓴 리뷰 논문 ‘꼬리 이야기(A Tale of the Tail)’에 따르면 꼬리가 길게 형성되는 선천성 기형 질환이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도지마 교수는 그런 생물학적 배경을 이해하면 인간의 기원을 알 수 있고, 선천적 척추 이상증과 연관된 질환 진단과 치료도 쉬워진다고 했다.

현재 인간 꼬리는 몸 안으로 들어와 골반 외벽이 되면서, 항문거근, 미골근 등 골반 부위 다양한 근육과 힘줄을 잡아 매준다. 앉을 때 몸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데 기여하고, 골반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미골통이 심하면 꼬리뼈 일부 절제로 통증을 줄이는 치료도 시도된다. 오래전 선조들처럼 균형이나 이동에 꼬리를 이용하지 않지만, 꼬리는 여전히 인체 구조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아주 사소한 자극이나 통증에도 힘들어한다. 가령 손가락에 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가시가 박히거나, 아주 작은 생선 가시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도 생활이 불편해진다. 그 때문에 일상이 깨지고 활동이 줄어든다. 피부에 쓸린 상처가 있거나, 근육 인대를 가볍게 삐끗한 경우에도 그렇다. 우리 몸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꼬리를 다쳐도 걸어 다니기 불편하고 활동 반경이 준다.

치아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씹기 힘들어지면서 영양이 부실해진다. 씹지 않으니 치아를 받치는 뼈에 자극이 줄어 뼈가 약해지고, 구강 근력 소실로 삼키는 힘도 약해진다. 그래서 흡인성 폐렴에 걸릴 수 있다. 치주 염증이 혈관으로 들어가 심혈관 질환을 촉발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과사용으로 거북목이 생기면 목디스크로 발전하고, 그러면 운동량이 줄어 체중이 는다. 나중에는 혈압이 오른다. 시력이 떨어지면 어지럼증을 낳고, 이는 낙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우리 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모든 부분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상 대대로 이어진 몸, 온전하게 무탈하게 쓰고 싶다면 작은 부분까지 살갑게 여기고, 사소한 틈새라도, 짧은 어지럼증이라도, 조그만 아픔이라도 서둘러 메우고 때우며 살아야 한다. 꼬리가 길어지면 사달이 벌어지는 법이다. 꼬리가 꼬리를 무는 게 질병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3/05/H4BLCIQSGVGCLD6TRNIROHH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