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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서울 성동구 김씨, 모르는 새 안전보험 2개나 있었다

서울시, 보험료 4년간 50억 냈는데… 시민은 모르는 ‘시민안전보험’
박진성 기자, 광주광역시=조홍복 기자
입력 2024.03.04. 03:00

일러스트=이철원


선거 때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시민안전보험’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시민안전보험은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단체보험을 들어 시민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치료비와 위로금 등 보험금을 주는 복지 정책이다. 해당 지자체에 주소를 둔 시민이면 자동으로 가입되고, 3년 전 사고까지 보험금을 청구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연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씩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실제 보험금을 타가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지자체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자니 보험금 청구가 급증해 보험료가 오를까 봐 걱정되고, 이미 도입한 걸 없앨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계륵(鷄肋)’이 따로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김혜지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시민안전보험 및 자치구 구민안전보험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시절인 2020년 8억7000만원을 들여 보험에 처음 가입했다. 이후 사회재난 등 보장 항목이 추가되면서 보험료 예산은 지난해 21억480만원으로 불어났다. 자연재해나 대중교통 사고 등으로 후유장해를 입거나 사망하면 최대 2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4년 동안 보험금을 탄 서울 시민은 300명뿐이었다. 1년에 75명꼴이다. 사고별로는 대중교통 이용 중 사고가 143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발·화재 등 130건, 스쿨존 교통사고 17건, 자연재해·사회재난 10건 등의 순이었다. 최대 보장액인 2000만원을 받은 시민은 47명이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서울 시민 940만명 중 300명만 보험 혜택을 봤다는 것은 대부분 시민이 안전보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시민들 대상으로 보험금 찾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각 구(區)도 2018년 이후 잇따라 시민안전보험을 도입했다. 지난해 기준 25구 중 20구가 평균 1억원 이상을 보험료로 썼지만, 상황은 서울시와 비슷하다. 인구 54만명인 강남구는 작년 한해 보험금을 신청한 사람이 3명밖에 없었다. 지난해 보험 혜택을 받은 주민이 40명 미만인 구가 전체의 70%(14개) 수준이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송파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가입했는데, 굳이 비슷한 보험을 또 만들 필요가 있나 싶어서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방도 사정은 비슷했다. 세종시는 시민 안전보험에 가입한 2019년부터 5년간 보험금을 수령한 사람이 40명에 불과했다. 경기 성남시는 지난해 보험료로 1억7264만원을 냈지만 보험금 청구 사례는 15명, 5784만원에 그쳤다.


시민들은 “시민 안전보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강남구에 사는 이모(48)씨는 “주변에서 보험금을 탄 사람도, 신청하는 사람도 못 봤다”며 “시나 구, 보험사 어디든 주민들에게 가입 사실과 보장 범위 등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혜지 서울시의원은 “관성적으로 보험 예산만 책정할 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그래야 보험사 배만 불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해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안전보험 공약이 쏟아져 나왔고, 이후 눈에 띄게 늘었다”며 “선거용으로 도입하다 보니 운용이나 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보장 범위가 넓어 시민안전보험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도 있었다. 서울 성동구는 모든 상해 의료비가 보장돼 최근 2년간 646명이 보험금을 타갔다. 지난해 10월 자기 집 침대에서 떨어진 A씨는 치료비를 청구해 100만원을 탔고, 앞서 5월엔 손자에게 허리를 밟힌 B씨가 골절상으로 1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도봉구는 코로나 사망 위로금이 보장돼 2020~2023년까지 4년간 보험금으로 3억2500만원을 들여 189명이, 11억7408만원을 받아갔다. 전남도도 지난해 코로나 사망자 등 1181명에게 33억6700만원이 지급됐다. 지난 4년간 보험료로 81억원을 투입해 주민 2262명에 93억2400만원이 지급됐다. 다만, 전남도 관계자는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아 안전보험은 핵심 복지 정책으로 자리 잡았지만, 보험 예산이 대폭 늘어나는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3/04/QQYLP4FXSZEQVJFPPBDHC3QCC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