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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미래에 대한 비전 사라진 ‘저질’ 총선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입력 2024.04.05. 03:00

일러스트=이철원

선거는 정당의 ‘영혼’ 보여주는 정책 있어야
국민 ‘배고프지 않게’ 하겠다는 보수 이념도
‘배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진보 이념도 증발
상대 비난과 표 구걸만 난무하는 저급 선거
보수·진보 두 바퀴 크기 비슷해야 역사 전진
서로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 하는 선진 정치를

4·10 총선 사전 투표가 5일부터 시작된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는 열정 면에서는 역대급으로 대단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역대급으로 저질인 것 같다.

선진국을 포함,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때는 항상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명예롭고도 고상한’ 요소가 반드시 있다. 바로 그 정당의 ‘영혼’이 대거 노출된다. 정당의 영혼이 무엇인가? 바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보수’의 이념과 ‘진보’의 이념이다. 이 영혼이 선거의 중심에 있지 않는 한, 그 선거는 거리의 ‘부랑 집단들’ 간의 경쟁과 별반 차이가 없다. 궁극적으로 ‘땅 따먹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념이란 대표적으로 경제 정책으로 나타난다. 경제에서 무엇을 더 중요시할까라는 것이다. 경제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국민을 ‘배고프지 않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바로 ‘풍요’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배 아프지 않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평등’의 문제이다.

이 중 배고프지 않게 하는 문제, 즉 풍요를 중시하는 집단을 우리는 언필칭() 보수라 부른다. 풍요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국민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 자유가 있어야 새로운 도전, 혁신 등이 많이 일어나 ‘떡’이 더 많이, 빨리 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뒤따른다. 바로 ‘배 아픈’ 문제이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기는 것이다. 이 불평등 문제를 중시하는 자들을 우리는 소위 진보라 부른다. 한 마디로,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커진 떡’을 최대한 골고루 나눠 가지게 함으로써, 배 아픈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약자를 돕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여러 가지 규제를 새로 만들고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 시민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즉, ‘떡을 키운다’는 목표와 ‘떡을 나눈다’는 목표를 동시에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유를 확대하는 것과 축소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종류의 정당이 생기는 것이다. 자유를 더 중시하는 정당을 보수, 평등을 더 중시하는 정당을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이 두 정당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민이 궁극적으로 배고프지도 않고, 배 아프지도 않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두 정당은 ‘역사라는 수레의 두 바퀴’이다.

그 두 바퀴의 사이즈가 비슷하면 그 나라의 역사는 전진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그 마차는 제 자리에서 빙빙 돌게 된다. 대부분의 독재국가,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의 발전이 민주국가에 비해 대단히 느린 이유는 바로 두 바퀴 중 한쪽 바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선거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국민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이 떡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가, 떡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다. 다수가 전자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면 보수에 힘을 주고, 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진보에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국가의 기본적 작동 원리이다.

이번 선거를 역대급 ‘저질 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진짜 중요한 과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대방 ‘헐뜯기’와 ‘무엇을 만들어 주겠다’는 선심 정책 뿌리기에만 집중했다. ‘비난’과 ‘표 구걸’만이 난무했다. 그래서 저질인 것이다.

정당은 선거에서 ‘눈앞의 떡고물’을 넘어 반드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보통 캐치프레이즈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보수 정당 경우에는 ‘골라잡을 것이 많은 나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국민에게 자유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국민이 선택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골라잡을 것이 많을 때 아닌가? 그렇다면 진보에는 어떤 캐치프레이즈가 가능할까? 예를 들면 ‘배 아픈 사람이 적은 나라’ 같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배 아픈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래 비전을 향한 다양한 정책 구상들을 내놓을 때 국민은 그 정당을 신뢰하게 된다. 그들의 호소가 단순히 ‘표 구걸’이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형의 ‘품격 있는’ 선거이다.

보수와 진보의 두 바퀴는 꼭 필요하고 둘 다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수레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선진 정치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그런 선진 정치를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로 비상했던 대표적인 두 나라가 바로 미국과 영국이다. 정치가 그런 식으로 건강하게 작동하면 그 나라는 자원이 많든 적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강력하고도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불행히도 우리 국민 중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때로는 적대시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이상과 꿈’의 경쟁이어야 한다. 싸움판이 돼서는 안 된다. 수레는 두 바퀴가 공존할 때만 앞으로 제대로 전진할 수 있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은 서로를 인정하고 선의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가 얼마나 치졸하면서도 저급했는가는 구태여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4/05/5JRZBYXA5RF5NF3H6MOJOLFEY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