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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침대 이혼’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4.08. 20:21 업데이트 2024.04.09. 00:37

일러스트=이철원


30년을 함께 산 한 부부는 얼마 전부터 잠자리에서 귀마개를 쓴다. 코 고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먼저 준비했는데 언제부턴가 아내도 코를 골자 부부가 모두 쓴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서로 눈을 찌르거나 뺨을 쳐서 깨운 적도 있다. 남자가 직장 동료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아직도 한방을 쓰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모임에 나온 이 중 절반 이상이 각방을 쓴다고 했다.

▶미국에서 부부가 각방을 쓰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이 증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전체 부부의 35%가 따로 잔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통계를 보니 한 침대를 쓰는 부부는 절반도 안 되는 42%였다. 대표적 노령 국가인 일본은 100세 시대 행복한 노년을 위한 주거 형태로 ‘1인 1방’을 제시한다.

▶각방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코골이다. 인간은 소음이 35데시벨을 넘으면 잠을 설치는데, 코 고는 소리는 평균 50~60데시벨로 헤어드라이어 소음에 맞먹는다. 각자 쾌적하게 느끼는 침실 온도라든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다른 것도 각방을 쓰는 이유다. ‘각방 예찬’을 쓴 프랑스의 한 교수는 이런 문제로 다투느니 따로 자는 게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부부 금슬도 좋게 해 준다고 권했다. ‘한 침대 쓰는 부부’는 인류사에서 보면 최근 일이란 분석도 있다. 부부 침대의 대명사인 더블 침대는 인구 밀집이 빚어진 산업혁명 이후 보편화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전엔 부부가 안방과 사랑방에서 따로 지냈다.

▶각방 쓰기가 부부 관계를 해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각방을 쓰면 화해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 노년에 따로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수면 중 호흡곤란 같은 돌발 상황에 혼자 대처하기도 어렵다. 자녀에게 부모 사이가 좋지 않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다. 김사인 시인은 한 이불 덮고 살며 서로 의지하는 부부의 모습을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 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고 시 ‘지상의 방 한 칸’에 썼다.

▶각방을 쓸지 한 이불을 덮고 살지는 부부가 결정할 문제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하건 부부가 대화하고 합의하느냐일 것이다. 불편한데도 참고 속으로 쌓아두는 것도, 대화 없이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도 모두 부부 사이를 금 가게 한다. 고령화로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길어지고 있다. 부부가 백년해로의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4/08/6BHBSXZLHJAZLNI3UGIUMCBKD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