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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언론 회피는 ‘통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입력 2024.05.02. 23:58 업데이트 2024.05.03. 00:24

일러스트=이철원


이번 총선의 여당 참패,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민주국가에서 중간 선거는 항상 국민이 정권에게 주는 메시지다. 한마디로, 이번에 국민은 정권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불만은 어디서 초래된 것일까? 나는 그것이 정책보다는 도리어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국민의 정서나 감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데 대한 불만이라 생각된다. 왜 그런 인식이 생겼을까? 대통령이 언론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언론을 피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국민을 피한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2년 동안 공식 기자회견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민주국가 원수로서는 거의 기네스북감이 아닐까 추측된다(소위 그 ‘도어 스테핑’이란 것은 국민과 하는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만찬에 나오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TV에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그것을 때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관심은 TV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한다. 그가 실제로 하는 대화를 통해 감흥을 얻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느껴지는 국민들의 어려움, 소망 등에 대해 직접 관심을 피력할 때, 그때 비로소 국민은 ‘아 우리 대통령이 우리의 삶에 관심이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대통령이 언론과 대화하기를 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국민들의 삶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크게 성공한 대통령들의 공통점은 국민과의 대화, 즉 대언론 소통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그런 모델이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보자. 1933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전임자에게 사상 최악 유산을 물려받았다. 바로 그 무시무시한 대공황이었다. 그가 취임 직후부터 가장 중시한 것은 국민 통합이었다. 국민과 소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했다. TV가 제대로 없었던 때라 그는 라디오를 활용했다. 매주 한 번, 소위 ‘노변담화(爐邊談話)’를 통해 국민과 대화했다. 나라의 힘든 상황, 자신의 고뇌 등을 솔직히 털어놓고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돌파 전략을 설명하면서 국민에게 지지와 협조를 호소했다. 그 호소를 국민이 수긍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미국 국민 전체가 사실상 하나가 되었다. 그 단결된 힘이 지구촌 사상 최대 경제 위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은 그렇게 중요하고도 유용한 것이다.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는 거의 한 달에 한두 번씩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의 그 끊임없는 ‘국민과의 소통’은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두 위기, 즉 소련과 거의 핵전쟁 위기까지 갔던 ‘쿠바 사태’와, 당시 나라를 처절하게 분열시키고 있던 흑백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을 쌓아 주었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왜 그렇게 언론과 대화하기를 회피했을까? 나는 그분에게 한 가지 거대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대통령’이란 자리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두 역할을 주고 있다. 하나는 ‘행정가’이고 다른 하나는 ‘통치자’이다. 그중 핵심적인 것은 ‘통치’다. ‘행정’이 아니다. 행정은 방향만 주면 총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왜? 통치가 미치는 영향은 행정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통치는 헌법상 대통령 외에는 할 수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통치란 무엇인가? 그것의 핵심은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자신의 정책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다. 그 이해를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나라가 특정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활동, 그것이 통치의 핵심이다. 그 ‘통합’은 언론을 통해서 이룰 수밖에 없다. 언론을 회피하는 것은 ‘통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의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은 자명하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소위 ‘통치’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행정’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것은 국무총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한동안 ‘이 나라에는 총리가 둘이다’라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나는 대통령의 그런 처신이 자신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대통령이란 자리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통치자’가 아니라 ‘행정가’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그동안 ‘행정’은 열심히 했지만, ‘통치’는 대단히 게을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번 총선 대패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을 때, 국민은 한마디로 ‘약이 오른다’. 머슴이 주인을 주인 대접 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그런 유의 약 오름이다. 대통령이 해외나 다니며, 막상 그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한 나라의 주인과 소통하기를 경시할 때 주인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바로 그 불편함이 웅변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생각된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가지 책임, 즉 행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간의 우선순위를 자각해야 한다. 후자가 전자보다 10배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전자는 어느 공무원이나 할 수 있지만, 후자는 대통령밖에 할 수 없다. 그 책임은 언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루스벨트, 케네디 대통령이 했던 것같이 ’국민의 마음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지지는 꽃밭의 꽃들에 비치는 태양 같은 것이다. 그것이 줄어드는 만큼 그 꽃은 시들 수밖에 없다. 그 햇빛을 최대한 밝게 많이 받도록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다.

나는 윤 대통령이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가 가진 그 정의감, 용기, 애국심 등이 없었다면 ‘정의’보다 ‘내 편’을 더 중시했던 그 진보 집단의 통치가 5년간 더 계속됐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그 결과는 국가적 위기로 연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아직 정치 초년생이다.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 부족함은 앞으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총선의 참담한 패배가 윤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더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믿고 싶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5/02/7JN2CGJXXBCX7DE3BKZW2BK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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