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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차라리 내가 '범인'이고 싶다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입력 2025.01.15. 23:58

일러스트=이철원


“노래 부른 사람 누구야? 당장 나와!”

수능을 몇 달 앞둔 고3 교실은 침묵의 세계였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모의 문제집을 풀고 채점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교실에서 말이 사라졌다. 수능 날이 다가온다는 두려움,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한다는 다급함, 친구의 공부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뒤섞인 침묵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볼펜 소리만 교실에 가득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수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모의 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마치 환청처럼, 나직하고 아련하게 들렸다. 나를 포함해 교실 안의 모든 아이가 노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더니, 화난 얼굴로 나직하게 한마디를 했다.

“노래 부른 사람 누구야? 당장 나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모두 책상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친구들이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데 노래를 부른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라며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하셨다. 30분이 지나도 그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원망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접힌 무릎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그 친구가 나와주길 빌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책상에서 내려와서 엎드려뻗쳐!” 몇 십 명이 동시에 울분을 토하며 엎드렸다. 맨 앞쪽에서 엉덩이를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여러 종류의 분노가 밀려왔다. 왜 노래 부른 친구는 나오지 않는가? 왜 선생님은 노래 한 곡에 이토록 집요하게 모두를 괴롭히는가? 왜 나는 누가 노래를 불렀는지 전혀 모르는가?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나와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모두 한 차례 엉덩이를 맞았다. “1분 안에 안 나오면 다시 처음부터 맞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울분이 머리까지 치솟았다. 차라리 나였으면 좋겠다. 차라리 내가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다른 두 친구도 벌떡 일어났다. 우리 세 사람은 당황해서 서로를 바라봤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세 명 모두 노래를 불렀다고? 장난해? 진짜로 부른 게 누구야?”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셋은 서로 자기가 노래를 불렀다고 우겼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차례대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교실 아이들에게는 어떤 노래가 진짜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우리 셋은 더더욱 난감해졌다. 분명 노래를 들었지만 어떤 노래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네모의 꿈’을 불렀다. 친구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노래가 들려올수록 웃음소리는 커졌고, 급기야는 대폭소가 밀려왔다. 침묵의 세계에 정말 오랜만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였다. 우리 셋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었다.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 교실에 합창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춤까지 추어가며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신날수록 선생님 표정은 심각해졌다. 결국,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 세 사람은 학생 지도실로 끌려갔다. 이번에는 정반대 주문을 받았다. “너희 셋 중에 사실은 노래 안 부른 사람 나와!” 역시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두들겨 맞았다. 이상하게도 맞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 노래를 불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노래를 불렀는데 나오지 않은 그 친구 때문에, 교실 안의 모두가 분노하고, 탄식하고,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웃고, 손뼉을 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펼쳐진 우리만의 축제였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그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했고, 우리 앞에는 얼마든지 노래하고 춤추고 손뼉 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1/15/7BGNV5BUM5CJZD25WXKB5NRAP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