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e Against The Machine
박은식 의사·前 국민의힘 비대위원
입력 2025.01.17. 00:02 업데이트 2025.01.17. 05:24
‘자본주의에 분노하라! (Rage Against The Machine!-RATM)’고 노동자들을 향해 외치던 마르크스의 연설문을 그대로 그룹명으로 정한 록밴드가 있다. 케냐 공산 혁명군의 후손이면서 하버드대 정치학과에서 진보적 사상으로 무장한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와 멕시코 혁명군의 손자이면서 랩을 담당하는 잭 드라로차가 중심이 된 RATM은 강력한 메탈 사운드에 특이한 기타 이펙터 소리, 반미와 진보 사상 충만한 메시지를 그루브한 랩에 담아낸 곡들로 단숨에 세계적인 밴드가 됐다.
RATM은 스스로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사상 전쟁에 진심이다. 가사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라’는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고, 앨범과 콘서트 수익금을 좌익 활동가들에게 기부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뉴욕 증권거래소 폐쇄 운동을 전개했다.
RATM은 이라크 파병과 효순이·미선이 사건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돼 있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진보적이면서 예술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던 젊은이들에게 더 인기였다. 광주광역시에서 성장해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대위 군의관으로 임관하여 최전방 GOP 부대로 향하던 차 안에서도 나는 RATM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렸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본 북한은 RATM의 주장대로 자본주의를 파괴했더니 국민의 삶도 파괴된 모습이었다. 배급이 불량했는지 허름한 부대 주위에선 군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었고, 주변 농가에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1년 후 예방의학 장교로서 군 내 전염병 대응을 맡았을 때는 북한에서 말라리아, 기생충, 결핵약에 내성이 생긴 약제내성 결핵이 들끓는 현실도 알게 됐다.
그 시기에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이렇게 좋은 음향기기로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음악을 자유롭게 듣는 것도 결국 김성수와 송진우 같은 호남의 정치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고 군부정권이 경제발전과 복지 확대를 이뤄내고 김영삼이 목숨 걸고 민주화를 지켜냈던 그 축적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RATM의 공연을 다시 보니, 어릴 땐 보지 못했던 그들의 모순점들이 보였다. ‘그들의 음악은 과연 록과 힙합이 주류인 영미권 음악 시장의 영향 밖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펜더와 깁슨 같은 미국 악기 재벌의 기타로 연주하지 않았어도 과연 그런 퀄리티의 사운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MTV와 소니 뮤직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한 유통 판매가 없었더라도 과연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자유 민주주의 미국이 아니었더라도 RATM이 공연 중 성조기를 불태우고, 그 나라를 ‘악의 제국(Evil Empire-정규 2집 앨범의 제목. 미국이 소련을 가리켜 악의 제국이라 했던 비난을 미국에 돌려줌)’이라 부르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울 수 있었을까?’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러 비평가들의 같은 비난에 RATM은 상업적 네트워크라는 ‘수단’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의식을 심어주고 싸움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는 ‘목적’을 이루려 했을 뿐, 자본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개인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그렇게 기업이 쌓은 자본을 바탕으로 더 크게 투자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RATM에 집중된 인기를 바탕으로 더 큰 공연장에서 정치적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그들 메시지와는 다르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종주국인 영국과 함께하던 홍콩은 한때 동아시아 문화예술 콘텐츠 산업계의 리더였다. 하지만 중국에 반환된 된 후 세계적인 문화예술 콘텐츠가 나오긴커녕 공산당을 비판한 예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지경이다. 러시아는 유튜브를 금지했고 스포티파이는 철수한 상태다. 북한은 그런 서비스들이 애초에 금지되어 있고 청년들은 김씨 일가에게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방패로 끌려가고 있다.
자유가 사라진 곳에서는 인간을 감동시키는 문화 예술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역설적으로 자유분방한, 심지어 체제 전복을 주장하는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지켜 주고 그 메시지를 더 세련되게 해주고 더 널리 퍼지게 해주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시장경제인 것이다.
미·중 패권 전쟁이 본격화되고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군사 동맹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중재자 노릇을 하기엔 힘에 부치는 우리나라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도자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워도 되는 나라와 함께할 건가, 아니면 지도자에 저항했다가 목숨을 잃는 나라와 함께 할 건가? 그리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인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1차 탄핵안을 보면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구축한 걸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도대체 이 적대와 이 협력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많은 예술인들이 탄핵 찬성 시위 집회를 위해 음식을 선결제하거나 직접 공연하며 지원한다. 적절하지 못한 계엄에 대한 예술인들의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예술인들이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들마저 탄핵하며 공동체를 위한 법치를 무너트리고 그릇된 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들도 함께 비판해주셨으면 좋겠다.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지키고, 예술인들의 작품이 세련되게 그리고 더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RATM |
악의 제국(Evil Empire)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1/17/ZMKJ762JR5F25KZ75L2S32W5K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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