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게티 빌라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1.16. 20:25 업데이트 2025.01.17. 00:04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석유 재벌 J 폴 게티(1892~1976)는 1966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부자로 등재된 거부였다. “돈을 셀 수 있다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그런데 돈 씀씀이가 한없이 인색했다. 옷과 구두는 10년 넘게 입었고 호텔에 투숙하면 양말을 직접 빨아 신었다. 집에 손님을 초대해놓고 전화는 바깥 공중전화를 쓰라 했다. 1973년 마피아가 당시 16세이던 손자를 납치하고 귀를 잘라서 보내며 거액을 요구했는데도 흥정으로 몸값을 깎아 수전노라는 오명도 얻었다.

▶그런데 미술품 수집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30년대부터 고대 조각, 중세의 필사본, 인상파 회화 등을 모았다. 미술품을 혼자 즐기지 않고 자신이 살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개방했다. 1976년 사망할 때는 미술품 수집과 전시에 쓰라며 유산 7억달러도 기부하며 무료로 일반에게 개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아카이브 업체 ‘게티 이미지도 그의 손자가 세운 회사다.

▶게티는 수장품이 늘어나자 태평양과 접한 LA 팰리세이즈의 말리부 해안에 고대 로마 대저택을 재현한 미술관 게티 빌라를 지었다. 이번 LA 화재 중 팰리세이즈 지역 화재가 최악이었지만 게티 빌라는 주변 건물과 달리 홀로 무사했다. 첨단 방화 시스템과 직원들의 철저한 대비 덕분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게티 빌라에서 동쪽으로 30분 차를 달리면 샌타모니카 산맥 중턱에 게티 재단의 또 다른 미술관인 게티 센터가 나타난다. 이 일대가 2018년 화재로 서울 면적의 절반 가까이 탔는데 그때도 게티 센터는 건재했다.

▶게티 센터는 ‘백색의 마이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1997년 완공했다. 강릉 씨마크 호텔을 설계한 사람이다. 마이어는 산불이 흔한 LA 특성을 설계에서부터 반영했다. 유명한 흰색 외벽은 내연성 석재인 트래버틴으로 마감했고, 건물 밖 정원에 설치된 방화용 스프링클러는 약 400만리터의 물을 담은 대형 지하 수조와 연결돼 있다. 전시실에는 연기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가압 장치를 설치했다. 정원 조경수도 불이 잘 붙지 않는 것으로 심었다.

▶게티 빌라와 게티 센터에는 8000년 전 조각부터 현대 회화까지 미술품 수만 점이 전시돼 있다. 반고흐의 ‘아이리스’모네의 ‘건초더미’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 등도 모두 무사했다. 미술관 측은 화재가 수습되는 대로 다시 전시를 재개한다고 한다. LA를 넘어 세계적 명물인 두 미술관이 안전하다니 다행이다.

J 폴 게티
폴 게티 손자
게티 빌라
게티 센터
리처드 마이어
강릉 씨마크 호텔
반고흐 아이리스
모네 건초더미
루벤스 한복을 입은 남자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1/16/R2IKH3W5FNDNJOOOUP4GXV63H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