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기자
입력 2025.01.24. 20:55 업데이트 2025.01.25. 00:00
미국을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고 표현할 때 대개 떠올리는 것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지금의 매사추세츠주(州) 플리머스에 내린 순례자들이다. 이들이 영국 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떠났기 때문에 미국은 반(反)성공회적인 나라일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독실한 성공회 신도였고, 그가 태어난 버지니아는 ‘성공회의 보루’였다. 청교도보다 먼저 신대륙에 도착한 것도 성공회 신도들이었다.
▶영국 성공회는 아내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재혼하고 싶었던 헨리 8세가 1534년 이혼에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과의 단절을 선언하며 만들었다. 영국은 1607년 북미에 첫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앤 불린의 딸이자 ‘처녀 여왕’으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1세를 기려 ‘처녀지’란 뜻의 ‘버지니아’란 이름을 붙였다. 왕실 공인 식민지였던 만큼 영국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성공회 사제들도 파견됐다.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되자 많은 성공회 사제가 캐나다나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일부 성공회 사제는 독립을 지지했다. 1776년 미국 독립 후 이 성공회 사제들이 신앙의 틀은 유지하되 영국 왕실과는 단절한 ‘미국 성공회’를 출범시켰다. 영국 성공회는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인데 미국 성공회는 ‘주교의 교회(Episcopal Church)’로 공식 명칭도 달라졌다. 역대 미국 대통령 45명을 종교별로 나누면, 가장 많은 11명이 성공회라는 사실도 놀랍다. 그다음으로는 장로교·감리교·침례교 등이 많다. 가장 최근의 성공회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였다. 아들 부시는 아내 로라를 따라 감리교로 옮겼다.
▶영국에서 독립은 했지만 미국인들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같은 대성당을 수도 워싱턴 DC에 두고 싶어했다. 1907년 고딕 양식의 ‘워싱턴 국립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당시 주류였던 미국 성공회 소속이었다.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에 있어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세인트 존스 교회도 성공회 소속이다. 미국 성공회는 신자 150만명 정도로 교세가 약화됐지만, 여전히 대통령 취임 기도회는 전통에 따라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 기도회에서 성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자비를 요청한 국립 대성당 여성 주교 매리앤 애드거 버드 를 “극좌파”라고 비난했다. 오늘날 미국 성공회는 성소수자와 난민 포용을 강조하는 비교적 진보적 종파다. 진보 성향이 강한 워싱턴 DC와 정반대 성향인 트럼프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메이플라워호 ![]() |
조지 워싱턴 ![]() |
헨리 8세 ![]() |
앤 불린 ![]() |
엘리자베스 1세 ![]() |
워싱턴 국립 대성당 ![]() |
세인트 존스 교회![]() |
매리앤 애드거 버드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1/24/R7BC46NI25CMHLFLV3TAQSLUJ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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