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2.02. 20:38 업데이트 2025.02.02. 23:52
필자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3저(低) 호황’으로 활기가 넘쳤다. 사회 분위기는 운전면허 취득 붐으로도 나타났다. 많은 청년이 학력고사 직후 또는 대입 후 방학을 이용해 운전면허를 땄다. 그런데 한 세대 만에 옛얘기가 됐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태어난 필자의 아들딸만 해도 운전에 관심이 없다. 아들은 속칭 장롱 면허이고 대학 졸업반인 딸은 면허가 아예 없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찰청이 엊그제 내놓은 통계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다. 전국의 운전면허 학원 수가 2018년 383곳에서 지난해 344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2020년 106만여 명이던 연간 면허 발급자 수가 2022년부터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2023년엔 87만여 명까지 줄면서 학원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면허를 따야 할 청년 인구가 줄어든 탓만은 아니다. 미성년에서 18세 이상 성년이 된 인구는 2020년 55만여 명에서 지난해엔 43만여 명으로 11만명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신규 면허 취득자는 그 두 배 가까운 19만명 줄었고 그중 80%가 20대였다. 2023년도 신규 면허 취득자는 전년 대비 약 8만9000명 줄었는데 98%가 20대였다는 통계도 있다. 20대의 신차 등록 대수도 2014년 약 11만대에서 지난해 8만대로 주저앉으며 ‘안티 드라이빙’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많은 젊은이가 “굳이 면허를 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인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외출도 덜 한다. 물건은 홈쇼핑으로 사고 영화는 노트북 등으로 내려받아 집에서 본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속파여서 세금·보험료·기름값으로 연간 수백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한다. 전기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처럼 저렴하고 요즘 말로 ‘힙’한 대체재도 있다.
▶‘안티 드라이빙’ 세대 등장의 이면엔 짙은 음영도 드리워져 있다. 전체 20대 일자리의 30%가 계약 기간 1년 미만 비정규직이다. 초단기 알바를 합하면 20대의 약 40%가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려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신차 소유는 고사하고 면허 따는 것조차 주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 TV 자동차 광고에선 20대 청년이 소형차를 몰고 예비 장인·장모에게 첫인사를 갔다. 요즘엔 그런 광고를 볼 수 없다. 청년들은 “취직도 안 되고 결혼할 돈도 부족한데 차는 언감생심”이라고 하소연한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2/02/CIVI5LBAPBBNJKZTOUBYGMOIL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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