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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忌日이 되면 '홀로그램 묘비'가 솟아난다는데…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25.02.04. 00:11 업데이트 2025.02.04. 00:25

수목장 나무 DNA에 고인 코드 삽입…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
직접 방문 어려우면 유족 아바타 보내 산 자·죽은 자 디지털 대면
"추모의 마음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네카팡·유족의 윈윈일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8회 #디지털 제사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이 내놓은 추모와 애도 서비스, 일명 ‘디지털 제사’는 세 가지 아이디어가 결합한 것이었다.

첫 번째는 물론 2020년대에 생긴 ‘데드봇’ 서비스였다. 고인이 살아 있을 때 쓴 글, 메일과 문자메시지 기록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 마치 죽은 이와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유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챗봇 말이다. 영상과 음성까지 입력하면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 수도 있다. 이 서비스는 잠깐 유행하기는 했지만 결국 외면받았다. 사람들은 망자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불편해했다. 죽은 연인이나 자식의 디지털 환상을 붙들고 사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용료를 부과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매우 나빴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부분적으로 그런 데드봇 서비스의 반발이기도 했다.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인터넷에 남긴 글이나 영상, 음성을 사후에 누군가 이용해 챗봇이나 아바타를 만든다는 생각에 치를 떠는 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 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망자가 산 자들의 세상을 활보하는 걸 원치는 않았다.

세 번째 아이디어가 결정적이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증후군’이라는 업계 은어가 있었다. 평소 연락 없이 지내던 자식이 부모의 임종 직전 갑자기 나타나 떼를 쓰며 무리한 연명 의료를 요구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의 죄책감과 지불 능력은 임종 직후에 최고조가 된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는 죽은 자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최고급 수의와 관이 잘 팔린다.

네카팡은 이 세 가지 아이디어를 결합해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관계자들의 실리를 엮고, 겉에 적절한 명분을 두르고, 그 위에 고대 철학을 조금 뿌린 상품을 만드는 것. 네카팡 이매리 의장은 자기 오빠가 암으로 사망하자 가장 비싼 옵션으로 장례를 치르며 네카팡의 추모와 애도 서비스를 세상에 선보였다. 먼저 시신은 6시간 만에 ‘재순환화’ 과정을 거쳐 곱고 향기로운 흙가루가 됐다. 과거에 마케팅 감각 없는 연구자들이 ‘인간 퇴비화’라고 불렀던 공정이었다.

이매리 의장은 한때 오빠의 육신이었던 그 흙으로 수목장추모공원에서 나무 묘목을 심었다. 나무의 DNA에 고인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짧은 코드로 삽입돼 있었다. 이매리 의장은 장례식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겉으로는 다를 게 없지만 유족에게는 특별한, 단 한 그루뿐인 나무”라고 말했다. 그렇게 심은 나무 근처에 유족이 다가가면 홀로그램 묘비가 솟아올랐다. 고인의 얼굴과 간단한 이력, 추모의 글을 입체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바닥에 설치돼 있었다. 홀로그램 묘비는 옷에 태그를 단 유족 앞에서만 나타나서, 수목장추모공원의 다른 구역을 걷는 건 그냥 조경이 잘된 수목원을 산책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명절 때, 그리고 기일 때 고인의 디지털 아바타가 활성화됩니다. 그때 나무 앞에 서면 떠난 이의 모습이 나타나 유족들과 대화할 수 있어요. 그렇게 고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딱 7일이에요. 그 7일은 미리 지정해놓는 거죠. 적절한 의식과 의무감이 있어야 추모의 마음이 제대로 생기죠.”

그렇게 지정한 7일도 요금을 내면 변경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이매리 의장은 거기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네카팡의 디지털 아바타가 고인의 생전 모습 그대로를 복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설명하지 않았다. 고인의 디지털 아바타는 좀 더 평화롭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래야 유족들이 더 만족할 테니까. 결국 이 모든 게 남은 자들을 위한 서비스 아니었던가? 대신 이매리 의장은 “고인의 디지털 유산은 저희가 책임지고 관리합니다”라고 말했다. 생전에 쓴 글이나 영상, 음성으로 유족의 허락 없이 망자를 복원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있다면 네카팡이 대신 소송을 걸어준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네카팡에 법률 대리인 역할을 맡기는 비용은 한 번에 지불할 수도 있고 구독료처럼 매달 낼 수도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이라면 거절하지 못할 서비스였다. 인터넷의 무뢰한들이 부모를 욕되게 하는 일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네카팡의 추모와 애도 서비스는 크게 히트했다. 가장 큰 수익은 사이버 차례 서비스에서 나왔다. 명절에 사정이 생겨 수목장추모공원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가족이 자기들의 디지털 아바타를 보내 고인의 무덤인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네카팡은 그렇게 산 자들의 디지털 아바타가 죽은 자의 디지털 아바타와 대화하는 모습을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해 유족에게 보냈다. 동영상 속에서는 모든 이가 평화롭고 화목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추모와 애도의 마음 아니겠는가.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2/04/C2WDG4YASRD5BCLS5LAWASUGQ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