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 논설위원
입력 2025.02.05. 20:29 업데이트 2025.02.05. 23:39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인생은 1999년 옷 로비 국회 청문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가 참고인 선서 때 “앙드레김입니다”라고 하자, 법사위원장은 “본명을 말하세요”라고 했다. “김봉남입니다.” 프랑스 유학파 앙드레김의 고향(구파발)과 본명(김봉남)이 처음 알려졌다. 좌중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는 의원들에게 “제 패션쇼에 꼭 와달라”는 말로 청문회장을 떠났다. 그러나 집에 와선 가족에게 “우리 이민 갈까”라며 힘들어했다고 한다. 천안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영어로 쓴 ‘앙드레 김’과 한자로 된 ‘개령김공봉남지묘(開寧金公鳳南之墓)’가 함께 새겨져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적폐 청산’이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2018년 10월 10일, 국가대표 야구 감독 선동열이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선 감독이 병역 면제 특혜를 주려 특정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했는데 그 배후에는 ‘적폐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의원이 질책하자 선 감독은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 후 대표팀 전임 감독제는 폐지됐다. 우연인지 국가대표 야구팀 성적도 급전직하했다. 그날은 야구인 사이에서 ‘치욕의 날’로 불렸다.
▶국회의원들은 튀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한다. 증인 채택은 좋은 도구다. 2023년 국정감사에서 과일에 설탕물을 바른 중국식 설탕과자 탕후루 대표 정철훈이 국회에 불려 나왔다. “소아 비만, 소아 당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추궁에 회사 대표는 “개선하겠다”고 했다. 학생들 입맛이 변했는지 탕후루 열풍은 그때를 기점으로 꺾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300조원’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 의원은 윤지오라는 연예인을 국회 간담회로 불러 윤씨의 대국민 사기극 무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동물도 자주 국회에 불려왔다. 야생동물 불법 포획을 지적한다며 구렁이를, 중금속 오염과 무관하다며 지역구 산낙지를 가져온 의원도 있다. 동물 학대라며 국회에 동물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된 적이 있다.
▶비상계엄 국회 청문회에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여러 번 찾아갔다는 무속인 ‘비단 아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야당 의원들은 노씨에게 무슨 점을 봐줬는지, 계엄 이야기가 있었는지를 집중 질문했다. 비상계엄과 무속을 어떻게든 엮어보려 했지만 “점괘에 맞춰 계엄을 선포했다”는 화끈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굳은 표정의 장성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무속인을 보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지경이다.
앙드레김 ![]() |
선동열 ![]() |
탕후루 대표 ![]() |
윤지오 ![]() |
구렁이 ![]() |
산낙지 ![]() |
비단 아씨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2/05/JKPNGL6T6NHTNGNSCDO7F6U4DE/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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