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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아부의 기술

김진명 기자
입력 2025.02.09. 20:02 업데이트 2025.02.09. 23:27

일러스트=이철원


2023년 별세한 헨리 키신저는 냉전 시대 소련과 중국 간 균열을 이용해 미·중 수교를 이끌어 냈다. 그에게는 ‘아부’도 중요한 외교 수단이었다. 1971년 중국을 비밀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와 만난 키신저는 회담 초반부터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에 비교하면 미국은 개발 중인 신흥 국가였다” “(중국은)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라며 상대를 띄워줬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에 합의했다. 미국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훗날 키신저 전기에 그가 “아부와 아첨으로 적들의 인정을 받은 뒤 그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했다”고 썼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1937년 자신에 대한 아부가 ‘안이함’을 초래한다며 ‘찬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의심 많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부와 개인 숭배는 끊이지 않았다. 북한의 김일성도 아부를 잘해 그의 인정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1950년 7월 김일성이 소련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스탈린 동지, 저의 가장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7일 워싱턴 DC를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첫 회담을 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아부의 기술(the Art of Flattery)”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트럼프와 회담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가 “엄청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친구”라고 아부를 했는데, 이시바도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이시바가 “TV에서나 뵙던 분(트럼프)을 가까이서 뵙는다는 감동이 각별했다”고 말하자, 트럼프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시바는 트럼프에게 백금 사무라이 투구도 선물했다. 트럼프 집권 1기 아베 신조 전 총리 금장(金裝)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해 환심을 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시 미국에서 ‘아부로 트럼프를 조종한다’는 말을 들었다. 취임 1년도 안 된 트럼프에게 “대통령께서 만든 위대한 미국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트럼프의 지도력은 남북한 주민, 더 나아가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각하”로 부르며 “위대한 결단과 훌륭한 리더십”을 칭찬한 북한 김정은의 편지도 두고두고 자랑해 왔다. 아부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번 미·일 회담에서도 트럼프는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관이라면 ‘아부의 기술’을 각별히 연마해야 할 시절인 모양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2/09/NVMQJGEJIJG5XOQ6D4XCQIX3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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