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2.10. 20:54 업데이트 2025.02.10. 23:57
19세기까지만 해도 발레의 주역은 여성이었다. 발레리나들은 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 하는 남자’를 보는 세상의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영국의 가난한 광부가 권투 챔피언이 되라며 아들을 복싱 학원에 보낸다. 그런데 아들이 춤을 추고 싶어 하자 “발레는 남자가 할 게 아니야!”라며 화낸다. 영화는 빌리가 남자 무용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싸워가며 왕립 발레단원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1909년 파리 샤틀레 극장 무대에 선 러시아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남성 무용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대중에 각인시킨 발레리노다. 파리의 관객들은 그의 작은 키(163㎝)를 보고 비웃었다. 니진스키는 공연 내내 다른 무용수보다 목 하나 높이 도약해 허공에 오래 머물렀다. 마치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듯 힘차고 우아한 동작으로 무대를 지배했다. 그 후 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남녀 2인무인 파드되에서 여성을 깃털처럼 들어 올리는 발레리노 비중이 전보다 더 높아졌다. ‘지젤’에서 발레리노가 32번 도약하며 앙트르샤(제자리에서 점프해 두 다리를 앞뒤로 교차하는 기술)를 선보일 때면 객석에서 탄성이 터진다.
▶발레리노는 극한 직업이다. 베테랑도 앙트르샤를 할 때면 20회쯤부터 숨이 거칠어진다. 멀리뛰기 하듯 낮게 수평으로 날면서 다리를 교차하는 브리제도 발레리노만의 기술이다. 힘든 내색을 보여선 안 되니 등·엉덩이·허벅지를 쉼 없이 단련해야 한다. 등과 발목, 발가락에 통증을 직업병처럼 달고 산다. 발레리노의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동작은 이런 피땀의 결과다.
▶ 니진스키는 아홉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발레학교에 들어갔다. 이재우·한성우 등 우리나라 스타급 발레리노들도 그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발레에 입문했다.
▶16세 소년 발레리노 박윤재군이 8일 세계적 권위의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강국의 위상을 다시 보여준 쾌거다. 그러나 콩쿠르는 등용문일 뿐이다. 훗날 프로 발레단에 들어가게 되면 ‘코르 드 발레’라는 군무(群舞) 단원부터 시작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최영규 등 세계적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도 모두 그 과정을 밟았다. ‘마린스키의 왕자’로 불리는 김기민은 지난해 서울을 찾아 파리오페라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수석 무용수) 박세은과 멋진 파드되 무대를 펼쳤다. 박윤재군이 이런 발레리노의 맥을 잇기를 기대한다.
빌리 엘리어트 ![]() |
바츨라프 니진스키 ![]() |
지젤 ![]() |
이재우 ![]() |
한성우 ![]() |
박윤재 ![]() |
최영규 ![]() |
김기민 ![]() |
박세은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2/10/2HDNMFKYCZD4TJVMGIGBHFBUC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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