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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진영의 자작나무 숲] 흰 눈과 시베리아, 그리고 카추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5.02.11. 00:21 업데이트 2025.02.11. 00:26

'부활' 여주인공 카추샤… 시베리아로 떠난 애달픈 박명가인
그녀에 매료된 일제강점기 청춘들, 흰눈의 시베리아 동경해
삶이 진창 같은 때 눈 덮인 시베리아로 방랑길 떠나고 싶다

일러스트=이철원


톨스토이 작 ‘부활’은 나를 감격하게 한 작품 중 한 가지다. …. ‘부활’ 중 어느 대목이 가장 가슴을 치더냐 하면, 마지막에 네흘류도프가 공작과 그 밖의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또 재산과 사모하여 뒤에 따르는 명문의 여성까지 모두 버리고서 오직 옛날의 애인 카추샤를 따라서 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시베리아로 떠나가던 그 마당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숭고하고 심각하며 엄숙한 맛에 놀라움을 깨달았다.”(이광수 ‘부활과 창세기와 내가 감격한 외국 작품’)

춘원 이광수를 사로잡은 ‘부활’의 감동은 ‘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하녀 신분인 카추샤와 귀족 신분인 네흘류도프가 먼 옛날 저지른 욕정의 죄를 뉘우치고 각자 거듭난다는 이야기에서 흰 눈과 시베리아가 빠진다면 아마 고결한 순정의 느낌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광수가 기억하는 그 장면은 정작 원작 소설에 없다. 네흘류도프가 카추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가는 시기는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닌 “뜨거운 7월의 여름날”이며, 유형 가는 죄수들을 죽도록 괴롭히는 것도 강추위가 아닌 땡볕 더위다.

평생 톨스토이를 읽었다는 이광수가 왜 이런 헛소리를 했을까? 최남선이 ‘청춘’ 잡지에 6쪽짜리 요약본을 처음 소개한 것은 1914년이다. 같은 해 일본에서 청춘 남녀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신파극 ‘카추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막간에 삽입된 ‘카추샤의 노래’는 일본 엔카의 원조로 여겨진다. “가엾은 카추샤, 헤어지기 서러워라/ 싸리눈 녹기 전에/ 신에게나 빌어 볼까? ~.” 이런 노래다. 눈 내리는 이별 장면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연극과 노래를 통해 ‘흰 눈과 시베리아와 카추샤’는 대중의 의식 안에서, 대중적 취향과 결합한 압축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상상의 감화력이 실제를 능가하는 법이다. ‘눈 덮인 시베리아’의 낭만적 정서는 이후 가까운 이국 땅 러시아의 표상으로 굳어져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순백 이상향까지 이어진 것 아닌가 싶다.

사회 제도와 인습의 부조리를 설파하는 톨스토이 소설이 일개 멜로 드라마로 통속화한 점은 아쉽지만, 문학은 시대와 사회의 독법에 따라 재탄생하며, 또 그 독법이 시대상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순정을 배반당해 죄악의 길로 빠져버린 ‘박명가인’ 카추샤의 애달픈 운명은 결코 먼 나라 남 이야기일 수 없었다. 왜 그토록 많은 여성이 따라 울며 수많은 판박이 애화(哀話)를 신문·잡지에 기고했겠는가. 왜 이광수 소설 ‘무정’의 박영채나 ‘재생’의 김순영이 육체적 타락과 참회와 구원에 이르는 뻔한 인생 곡절의 공식을 되풀이했겠는가. 사랑에 울고 도덕에 울던 시대, 카추샤는 그 시대의 여성 대명사였다.

그러나 ‘부활’은 원래가 남성의 자기 구원 서사다. 대학생 네흘류도프는 방학 때 쉬러 내려온 시골 영지에서 어여쁜 카추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본능적 욕정을 해소한 후에는 곧 그녀를 버리고 아무 죄책감 없이 상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다 뒤늦게 범죄자로 몰린 카추샤와 재회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녀를 구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마침내 그 자신도 도덕적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고 감동했을 때의 최남선이 19세, 이광수 17세, 훨씬 나이 많다던 홍명희가 23세였다. 스무 살 안팎 조선 청년들은 소설을 참고서 삼아 자기 또래 러시아 귀족이 육체에 눈뜨는 과정을, 그리고 10년 지나 치를 그 죄업을 대리 경험(또는 학습)할 수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그들 모두의 분신이었다.

부활’의 감동은 독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교훈으로 전파하고, 더 나아가 몸소 실천해야만 했다. 순진한 ‘누이’, 여학생 제자, 사랑하는 여인에게 카추샤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 감동해 마지않는 엘리트 ‘오빠’의 초상이 그렇게 탄생했다. 이광수 하얼빈 유곽에서 만난 일본인 창부에게 줄거리를 얘기해 주다 보니 네흘류도프가 카추샤 뒤를 따라 시베리아로 떠나는 장면에 이르러 동이 터왔고, 그래서 금욕에 성공했다는, 마치 소설 한 편만 같은 회고를 남겼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작품 ‘유정’에는 이런 문장도 삽입했다. “눈 덮인 시베리아의 인적 없는 삼림 지대로 한정 없이 헤매다가 기운 진하는 곳에서 이 모습을 마치고 싶소.”

소설에서 딸 같은 남정임을 사랑하게 된 인격자 최석은 사랑을 죽이기 위해(즉 지키기 위해) 초극과 정화의 목적지인 ‘눈 덮인 시베리아’로 방랑길을 떠난다. 일제강점기의 시대 사조였던 시베리아 방랑 신화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신화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삶이 진창 같은 때면 나 역시 불쑥불쑥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2/11/YA4JVYE7O5CUPOK6DZC4XRA5C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