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입력 2025.02.26. 00:16 업데이트 2025.02.26. 09:58
핵개발 소재·부품, 북한 요원들 中·日서 몰래 선적해 평양에 보내
우라늄 녹이는 진공로는 4개국 거쳐 기계류로 둔갑해 북한에 반입
36년에 걸친 대북제재 사실상 실패… 北核은 있는데 南核은 없다
2005년 중국 해관(海關) 수출입 통계에는 특이한 물건이 있었다. 북한이 표준국제무역분류(SITC) 기준 낚싯바늘(Fish hooks)을 중국에서 0.1톤가량 수입했다. 수산업을 발전시키려는 당국의 정책에 따른 수입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북한 수산업은 선박과 연료 부족으로 붕괴된 지 오래다. 상당한 양의 낚싯바늘을 수입하는 건 북한의 절박한 외화 사정을 고려할 때 맞지 않았다.
북한 연구자로서 직업병이 발동해 해당 품목의 국제 상품 분류 코드인 HS코드를 추적했다. 중국 무역상과 관계 당국의 도움을 받아 해당 품목이 낚싯바늘로 표기됐지만 실제는 특수 금속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합성 모노 필라멘트라는 소재로 제작한 미상의 물건이었으나, 낚싯바늘로 포장됐다. 이 물건의 진짜 용도는 나중에 밝혀졌다. 플루토늄 방식의 핵실험에 사용되는 탄소섬유였고, 북한은 낚싯바늘로 위장해서 수입했다.
북한의 미사일·핵 개발 관련 소재·부품·장비와 김정은 일가에 필요한 사치재 조달은 중국을 통해 이뤄졌다. 다롄(大連)에 근거지를 둔 ‘신흥무역’ 회장인 엄광철은 선박 회사인 ‘다롄 글로벌’을 관리한다. 그는 북한 국가보위부 소속으로 글로벌 물자 조달 네트워크의 최고 책임자였다.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창구는 일본에도 있다. 북한 화물선 만경봉호가 원산항을 출발해 니가타(新潟)항에 입항하면 평양에서 온 보위부 요원, 사전에 지시를 받은 조총련 관계자와 사실상의 정보기관인 일본 외사경찰 간에 치열한 창과 방패의 정보 전쟁이 전개된다. 각종 대북 반출 금지 물자를 선적하려는 조총련과 이를 차단하려는 일본 경시청 외사정보부 요원 간에 두더지 잡기 게임이 시작된다. 튀어 오르는 두더지 인형을 망치로 때려 잡지만 순간적으로 허점이 생긴다. 2003년 로켓 연료 제조와 핵 개발에 전용 가능한 초미세 분쇄 장치인 일제 ‘제트 밀(jet mill)’이 만경봉호에 실려 동해를 건넜다.
일본 내부에서 이를 발굴하고 조달하는 역할은 ‘과협’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가 담당했다. 로켓 엔진부터 소재 및 유기화학 등을 전공한 조총련계 기술자들이 평양의 지시를 받아 물자를 찾아내고 만경봉호를 통해 실어 날랐다. 평양의 보위부는 2009년 만경봉호에 선적하기 어려운 일제 중고 대형 유조차 2대를 한국을 통해 우회 수입을 시도했다가 한일 정보 당국의 협력으로 사전에 적발됐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전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우리의 국가정보원장)은 2006년 이후 6차례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가 이뤄질 때마다 많은 일본 물품이 사용됐을 거라며 자책했다. 일본의 외사 경찰은 일본 항공기를 납치한 적군파(JR)를 유럽에서 검거하는 등 정보 역량이 세계 정상급이다. 그런 일본 외사 경찰도 중국과 연계되고 조총련과 친북 일본인들이 평양과 은밀하게 추진하는 금수 물자 거래를 철저하게 단속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지난해 우라늄을 용융(熔融)할 수 있는 진공로가 남아공, 스페인, 멕시코와 중국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북한에 수출됐다. 경유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HS코드가 ‘기계류’라고 변경됐다. 진공로는 핵무기 프로그램에서 핵심적인 장비로, 우라늄 금속을 용융해 틀에 부어 핵무기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장비로, 진공로 없이는 핵무기를 제작할 수 없다. 지난 1월 관련 보고서를 공개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수출 통제 경험이 없는 국가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사실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북한과 나카라과는 담뱃잎을 의료용으로 위장해서 수출하고 범용 플라스틱인 폴리프로필렌을 수입해 대북 감시망을 우회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는 물론 카자흐스탄 등 중동 인접 국가들과 우회 거래로 불법 물자를 획득해 왔다.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애초부터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결국 북핵 시설이 프랑스 상업용 위성에 의해 최초로 확인된 1989년 이래 대북 제재 36년은 두더지 잡기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북한은 국제사회의 망치를 피해 핵무기를 제조했고, 운반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에서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동결된 2500만달러로 북한 당국자는 피가 마른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영변핵 포기의 대가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1건 중 민생 관련 5건의 해제를 요구할 정도로 대북 제재가 북한의 돈줄을 압박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부품은 대북 제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차단하기가 용이했다. 지난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북·러 간 군사동맹조약 체결로 유엔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동맹조약에는 경제와 과학기술 교류가 포함되어 올해부터 북·러 대학 간 교류가 시작된다. 영국의 무기 감시 단체인 ‘분쟁군비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최신 전자 부품에 의존하는 북한 미사일’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한 북한제 미사일 잔해를 분석한 결과, 부품의 75%가 미국 회사가 설계·판매한 것이다.
요컨대, 대북 제재는 실패했고 북핵은 완성되었으나 남핵(南核)은 없다. 유엔에서 실효성 없는 대북 제재 이행만을 강조하는 것은 공허한 외교 레토릭에 불과하다. 남핵 잠재력(latency) 구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설움과 패싱은 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변해서 야당조차 핵무장을 주장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남성욱![]() |
합성 모노 필라멘트 ![]() |
제트 밀 ![]() |
기타무라 시게루 ![]() |
진공로 ![]() |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 |
마코 루비오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2/26/4277LZCOG5B7HNGUFWAVJCLAQ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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