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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벚꽃 위에 내리는 눈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4.13. 23:45 업데이트 2025.04.13. 23:47

(단양=뉴스1) 손도언 기자 = 13일 오전 충북 단양군 소백산 일대에 눈이 내려 4월 벚꽃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4.13/뉴스1

 

2~3월 눈이 오면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서둘러 카메라를 챙긴다. 이른 봄 눈 속에 핀 설중화(雪中花)를 찍는 것은 이들의 로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빠르면 2월 초순 눈을 뚫고 피는 복수초 사진은 비교적 흔한 편이다. 설중매는 매화 중 으뜸으로 친다. 설중 노루귀는 물론 설중 앉은부채, 설중 처녀치마까지 보았다. 그러나 설중 벚꽃은 본 적이 없다.

일러스트=이철원


▶13일 벚꽃이 만개한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눈이 내려 설중 벚꽃도 생겼다. 이날 오전 벚꽃 구경하려고 서울 남산 둘레길을 걷다가 싸락 우박을 맞았다. 강한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고 우박도 떨어지는데 어느 것이 꽃잎이고 우박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며칠 전 낮 최고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올라가 반팔과 민소매 차림이 등장했는데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식물은 기본적으로 날씨 변덕에 대비할 수 있게 진화했다. 꽃눈이 겨울잠에 빠진 다음 어느 정도 추위를 견뎌야 잠에서 깨어나고, 잠에서 깨더라도 따뜻한 날씨가 쌓여야 꽃이 피게 진화한 것이다. 식물마다 꽃이 피는 데 필요한 추운 정도와 따뜻한 정도가 다른데, 이를 수치화한 것이 냉각량(冷却量)과 가온량(加溫量) 개념이다. 철 모르고 꽃을 피웠다가 얼어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장치다. 벚꽃의 경우 일평균 온도에서 5.5도(기준 온도)를 초과한 온도를 더한 수치가 106.2도에 이르면 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정교한 생체 시계를 가진 식물들도 요즘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까지는 대비하지 못해 속수무책인 것 같다. 13일 오전 서울만 아니라 주변 도시에도 대기 불안정으로 지름 5㎜ 미만의 싸락 우박이 떨어졌고 전날 밤부터 이날까지 서울에 최고 0.6㎝의 눈까지 내렸다. 4월 내린 눈으로는 역대 둘째로 많은 양이다. 강원 화천 광덕산에는 10.4cm, 정선 만항재에는 9.4cm의 눈이 내렸다. 벚꽃 등 봄꽃들이 수정하고 열매를 맺는 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변덕스러운 날씨는 전형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했다. 북극 기온이 올라가 상공의 제트기류가 깊숙하게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폭염, 폭우와 같은 극단적 기상과 변덕스러운 날씨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과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가 앞으로 더 자주 심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변덕스러운 기상에 적응하고 대비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 같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4/13/6RPEK7KWX5DRFLJKR2BPX2U4G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