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10분의 1 값으로 사는 日 골프장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29. 20:44

일러스트=이철원


1901년 한 스코틀랜드 사업가가 고베 부근 로코산에 네 홀을 만든 것이 일본 1호 골프장이다. 현재 일본은 골프장이 2202곳에 이른다. 미국(1만4139곳), 영국(2660곳)에 이어 세계 3위다. 일본 골프장은 대부분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만들었다. 예탁금(입회 보증금)을 받아 회원제 골프장을 만들면 손쉽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기에, 기업들이 앞다퉈 골프장 개발에 나섰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여파로 골프 회원권 값이 폭락하고, 예탁금 반환 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골프장이 대거 도산했다. 2000년대 기업들이 법인 카드로 골프장 비용을 계산하지 못하게 하자 골프장의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 됐다. 이때 헐값 매물로 나온 일본 골프장을 골드만삭스, 론스타, 한국 사모펀드 MBK 같은 외국계 자본이 대거 인수했다. MBK는 일본 골프장 170곳을 8000억원에 인수해 최근 4조원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이 시기 그야말로 ‘재고 정리’ 수준 가격으로 일본 골프장을 사들인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연회비 500만원, 무제한 부킹’을 내세워 한국 고객을 대거 유치했다. 그 결과 한국에 일본 골프 여행 붐이 일고 한국 골프장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국내 골프장들이 다시 초호황을 누렸다. 골프장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으로 그린피, 식사비, 캐디피, 카트피를 마구 올렸다. 그늘집에서 떡볶이를 5만원에 파는 곳까지 나왔다.

▶국내 골퍼들은 코로나 유행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일본으로 가고 있다. 일본 그린피는 한국의 3~4분의 1 수준, 노 캐디에 카트비도 대부분 무료다. 가성비가 월등하다. 일본 골프장으로선 한국 골퍼들이 구세주나 다름없다. 일본 지자체는 한국 직항 노선을 추진하고, 한국 고객 1인당 숙박비까지 2만5000엔 지원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일본 골프장 인수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일본경제신문은 한국 기업이 인수한 일본 골프장의 회생 사례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현재 대다수 일본 골프장 가격은 홀당 10억원 정도로 한국 골프장의 10분의 1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 골퍼만 잘 유치하면 고수익 사업이 될 수 있다. 세계에서 선수가 아니면서 골프채를 들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고 한다. 해외 골프 나가는 한국인이 연 200만명을 넘는다. 반면 지난해 제주행 골퍼는 141만명에 그쳐, 1년 새 11만명이나 줄었다. 한국 골프장들이 위기를 맞을 차례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4/29/766E4L5K3JGBBME52GSA6GNDH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