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테토男, 에겐女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5.19. 20:49 업데이트 2025.05.20. 00:01

일러스트=이철원


서양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인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보편적인 관심에서 비롯됐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뜻을 둔 제자에게 “정치가로 성공하려면 먼저 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파악하라”고 조언하는 용도로 이 말을 썼다. 그러나 철학이나 과학보다는 주술에 의지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너 자신을 알라’도 원래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주술 문장이었다. 서양에선 점성술이, 동양에선 사주팔자가 그런 도구로 쓰였다.

▶현대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에선 AB0식 혈액형 분류법이 최근까지도 성격 파악 도구로 널리 쓰였다. 1927년 일본의 한 우생학자가 ‘혈액형에 의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A형은 소극적이고 B형은 진취적이라 규정한 게 계기였다. 한국에선 혈액형 속설을 근거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영화 ‘B형 남자친구는 일편단심인 A 혈액형 여자가 바람기 많고 이기적인 B형 남자친구의 마음을 잡기 위해 부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혈액형과 성격에는 아무런 과학적 상관관계가 없다. 인간의 성격을 고작 혈액형 4개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억지이고 비과학적이다. 그래선지 2010년대 들어 혈액형보다는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는 MBTI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청춘 남녀의 미팅 자리에선 이성에게 자신의 MBTI를 밝히는 것이 예의가 됐다. 기업들도 MBTI로 직원을 채용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자기소개서에 MBTI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올해 들어 MBTI 대신 ‘테토 남녀, 에겐 남녀’가 성격 분류법으로 유행한다고 한다. 테토와 에겐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줄인 말이다. 적극적이고 활달하면 테토남이나 테토녀, 상냥한 성격에 부드러운 얼굴선을 가졌으면 에겐남이나 에겐녀라는 식이다. 몇 해 전 국내 한 블로거가 분류법을 만들었고 이를 본 만화가가 그림으로 그려 소셜미디어로 퍼뜨린 게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확산했다.

테토 남녀 분류법도 과학적 근거는 없다. 성호르몬 수치도 재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 심리학자들은 “테토 남녀 같은 분류법은 그냥 재미일 뿐이니 이런 분류에 기대어 자신을 규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수 시인과촌장은 ‘가시나무’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고 노래했다. 사람의 마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배움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바뀌고 성장한다는 뜻일 것이다.

소크라테스
B형 남자친구
시인과촌장
가시나무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5/19/KI2MNCEI25BL3JVF74UDYKMCL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