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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하버드의 수난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5.25. 20:43 업데이트 2025.05.25. 23:51

일러스트=이철원


헝가리 출신인 미국인 부호 조지 소로스는 1991년 헝가리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부다페스트에 중부유럽대학(CEU)을 설립했다. 그러나 헝가리 독재자 오르반 총리에게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이 대학은 눈엣가시였다. 오르반 총리는 사소한 이유로 이 대학을 폐교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이 대학은 2019년 대부분의 기능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자체가 자율성을 중시하고 권력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적 권력과 갈등을 빚지 않을 수 없는 속성이 있다. 미국 건국보다 140년 빠른 1636년 설립됐고 대통령 8명을 배출한 세계적 명문 대학 하버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대 매카시즘 시대 하버드대도 정부가 학내에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움직임에 큰 피해를 봤다. 많은 교수가 해고당하거나 자진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버드대는 1960~1970년대 베트남 전쟁 때 반전 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반전 시위가 폭력 사태로 이어져 교내 학군단 건물이 불타기도 했다. 이 여파로 하버드대 ROTC 제도는 40여 년 동안 폐지됐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반유대주의를 부추기고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대학의 외국 유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했다. 이럴 경우 이 대학은 더 이상 외국 유학생들을 받을 수 없고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미 연방지방법원이 하루 만에 하버드대가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이 조치의 효력은 일시 중단됐으나 앞으로 소송 결과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돈으로 하버드대를 압박했다. 약 27억달러(약 3조7000억원)의 연방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장 부유한 대학’ 하버드대는 “장악당하지 않겠다”며 굴복하지 않았다. 하버드대의 2024년 현재 기금 532억달러(약 76조원)가 버팀목이었다. 그러자 외국인 유학생 금지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트럼프는 다른 대학도 외국인 학생 등록을 금지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버드 전체 학생의 4분의 1인 약 1만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한국인 학생도 400여 명 재학 중이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유학생 110만여 명이 수업료와 주택 자금 등으로 약 430억달러(약 59조원)를 쓰며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이 느낄 황당함과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5/25/J6TLLY5FEVGT5PPKHX6J6KA7KE/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