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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부산에 가면] 미워도 다시 한번… 가을엔 '부산 갈매기' 떼창을

오성은 소설가, 동아대 초빙교수
입력 2025.08.27. 23:50

데이트 장소이자 노래방, 경기의 흐름은 관중석의 날씨였다
'롯데 야구'는 여름까지였는데… 사직야구장에 다시 가야겠다

일러스트=이철원


나는 이제 야구 경기를 보지 않는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야구장 앞 도로는 우회해서 돌아간다. 왜 돌아가냐는 아내의 물음에는 실수인 척 웃어 보인다. 경기 결과는 잠들기 직전 숨을 참고 재빠르게 확인한다. 기쁨도 슬픔도 미움도 없이 점수를 본다. 차가운 심장이여, 창백한 얼굴이여.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그대 아직 자이언츠를 사랑하는가? 나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열어보려다 이내 화면을 종료한다. 더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날이 있었다. 주황 봉다리를 머리에 뒤집어쓰던 날이 있었다. 신문을 말아 쥐고 상대 투수의 견제구에 대항하여 ‘마!’를 외치던 날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날에는 옆자리 친구와도 잔을 치지 않았다. 손을 앞으로 뻗으며 자이언츠의 거인들과 마셨다. 그날도 신문 더미가 객석 위의 허공을 날아다녔고 흥이 오른 친구들이 그 신문을 내 몸에 칭칭 감아 인간 응원봉을 만들었다. 내가 의자 위로 올라간 건 나의 의지가 아닌 부산 사직구장의 의지였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파도타기 응원이 시작되었다. 몇 차례나 돌던 파도는 배트에 정타로 맞은 야구공과 함께 더 높이 치솟았다. 그래. 분명히 있었다. 홈런도 파울도 시원시원하게 잘도 넘어가던 시절이.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집으로 향하는 내내 부산 갈매기를 읊조리던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야구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데이트 장소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노래방이었다. 사직 야구장은 단순히 승리를 목격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부산 시민의 꿈과 애환이 담긴 광장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흐름에 달려 있었다. 경기의 흐름이 곧 관중석의 날씨가 되어버리는 신비로운 마법을 사직구장에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쏟아지는 스포츠 기사들 속에서도 나는 야구만큼은 클릭하지 않기로 굳세게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해에도, 그 지난해에도 결심했던 일이었다.

나는 다시금 읊조린다. 정규 시즌이라는 말의 의미가 뭐겠는가. 야구는 원래 여름까지다.

이런 상태에 빠진 건 나뿐만이 아닌 듯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삼겹살이 다 익기도 전에 롯데의 연패를 화제에 올렸다. 침 튀기는 비난이 쏟아지는 대신 우리는 연거푸 잔을 부딪쳤다. ‘이래야 롯데지’ 누군가의 한마디에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새로운 이야기로 옮겨갔다. 야구는 직장의 스트레스와 육아의 고충을 나누면서부터는 안줏거리도 되지 못했다. 롯데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지만 청춘을 지나온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 있었다.

1992년 롯데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MVP를 차지한 투수 박동희(1968~2007·오른쪽). /한국스포츠사진기자회


하나둘씩 혀가 꼬이자 우리는 술을 깨기 위해 노래방으로 향했다. 자리를 다 잡기도 전에 누군가 선곡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지금은 그 어디서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다름 아닌 부산 갈매기였다. 우리는 반주에 응원의 형식을 넣어 ‘부산 갈매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절정에 이르자 홈플레이트 위로 슬라이딩하는 선수의 손끝이 보이는 듯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이 조명탑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펜스를 넘기는 장면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의 노래는 어떤 함성처럼 들렸다.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

그날 롯데 자이언츠는 12연패를 탈출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다가오는 가을에는 야구를 보러 가야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8/27/WAV7UEVVBJBAFL5AJTTYIJMY5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