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내과 전문의
입력 2025.08.28. 23:50
존 레넌부터 신해철까지 종교가 위선 보이면 신랄하게 비판
정치 선동하는 일부 성직자 갈등 키우면 예술인들이 혼내야
종교는 정치에 몰입 말라… 낮은 곳 보듬고 공동체를 지키길

보수는 지킨다는 말이다. 무엇을 지킬 것이냐 묻는다면 사람마다 자유, 가족, 전통, 국가, 자본주의 등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그 질문을 서양의 보수주의자들에게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대다수가 이것들을 존재하게 만든 근원적인 힘, 기독교 문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독교를 빼놓고 서양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순교의 역사에서 보듯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의 신념은 강력했다. 그 힘으로 유럽을 장악한 기독교가 타락해 면죄부를 팔자 진정한 신앙인들은 이를 비판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가 필요했다. 이런 종교개혁의 내용을 인쇄해 나눠주려면 출판의 자유가 필요했다. 또 이를 함께 논의하려면 결사의 자유가 필요했다. 이런 요구가 헌법에 반영되며 근대 국가로 발전하는 정치 개혁이 이어졌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했듯 노동과 직업을 통한 부의 축적은 죄가 아니라 신의 소명이며 축복으로 여겨졌다. 사유재산 축적이 정당성을 얻으면서 자본주의가 꽃을 피워 서구 세계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격차의 해소도 기독교의 몫이었다. 사제들은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가장 낮은 곳’에 찾아가 헌신했다. 부자들에게는 빈자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가 평등함을 설파한 예수의 정신은 노예를 해방하는 근거가 되었다. 무신론과 전체주의로 무장한 공산 국가들의 거센 공격 앞에 자유 진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구의 정신과 사회 문명에 기독교가 깊이 뿌리내려 있으니 많은 서양인이 보수주의와 기독교 문명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모든 예술가들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매혹적인 주제였다. 록 음악도 마찬가지다. 다만 록은 억압과 위선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강렬한 사운드에 담아내는 장르이기에 기독교와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록이 반(反)기독교적 예술 장르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에 대한 존중이 보인다.
비틀스의 존 레넌은 1966년 인터뷰에서 “기독교는 시들어가고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보다 인기가 많다”는 발언으로 거센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다음 발언인 “예수는 옳았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바보였다”에서 보듯 그의 초점은 기독교 자체가 아니라 예수를 둘러싼 이들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행태였다.
이후 블랙 사바스, 매릴린 맨슨, 최근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고스트까지 반기독교적 이미지를 차용한 밴드들이 록의 주류를 이뤘다. 이들은 공연에서 사탄의 복장을 하거나 성경을 불태우고 십자가를 거꾸로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악마 숭배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움, 위선적인 성직자,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려는 장치였다. 블랙 사바스는 “우리는 악마를 찬양한 게 아니라 현실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매릴린 맨슨은 “하느님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죄의식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해철은 ‘예수 일병 구하기’라는 곡에서 “주 예수를 팔아 십자가에 매달아 삐까번쩍 예술적 건물을 올릴 적 아주 난장이 한창” “천국행 직행표 공동 구매 대행”이라며 일부 교회의 상업주의와 배타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하늘의 옥좌를 버리고 인간이 된 private Jesus. 그가 바란 건 성전도 황금도 율법도 아니라네, All we need is love”라며 예수의 본질적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신앙이 지녀야 할 진정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록 뮤지션들은 기독교가 세운 인간 존엄과 사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압제와 위선의 도구로 전락할 때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음악인들의 비판은 역설적으로 기독교 문명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었다. 신성 모독을 이유로 비판을 억압하는 일부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비판을 수용하며 스스로를 개선해 온 것이다.
최근 한국의 기독교계는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기는커녕 유발하는 일이 잦다. 어떤 신부는 전직 대통령 시절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광장에서 극단적 선동에 앞장서고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는 목사도 있다. 성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이런 행위들에 대한 영향력 있는 예술인들의 비판이 절실하다. 그런데 용기 있게 나서는 이가 없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예술인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그렇다.
기독교의 권위를 허물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흥망과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적 신념이 공동체를 지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쓰이도록 견제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종교가 사회의 낮은 곳을 보듬지 않고 갈등을 조장한다면, 그 끝은 혼란과 파멸뿐임을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최근 한국에 록밴드 붐이 다시 일고 있다. 영향력 있는 음악인이 무대 위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외칠 때, 그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가 된다. 신해철 같은 록 뮤지션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종교가 공동체를 지키는 본연의 역할을 하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록 밴드 '고스트'. ![]() |
가수 신해철.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8/28/H252XT57UZC3ZKJ767K6P45VX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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