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단편소설] ③소향 '먹(墨)' ― 3·1 운동을 기억하며
조선일보 국가보훈부
입력 2025.08.30. 00:52 업데이트 2025.08.30. 07:46

질척한 눈을 끌며 늦게까지 머무르나 싶던 겨울이 홀연히 물러났다. 어느 날 아침 방문을 열자, 마당 가득 볕이 내려앉아 있었다. 담장 옆 복숭아나무 가지에 연분홍빛 움이 트는 걸 보고 알아차렸다. 봄이 왔다.
어머니는 장독 뚜껑을 들려다 말고 손갓으로 햇살을 가리며 슬며시 웃음 지었다. 올해는 꽃이 일찍 필 거라더니,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동대문 밖 마장골 들판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개나리도 연둣빛 봉우리를 터트리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열다섯 난 손아래 동생 단이가 어머니에게 마포 나루 모래 둔치로 꽃놀이 가자 졸랐다. 작년 봄나들이 기억이 꽤나 좋았던 성싶었다. 그날 사방으로 돗자리가 펼쳐진 둔치엔 물결이 은빛 솜을 풀어놓은 듯 반짝였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첨벙거렸더랬다. 물가 근처 실처럼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릴 때, 햇살에 파르르 떨리는 버들잎 아래로는 가지마다 방울을 달아 놓은 듯한 개나리가 무리 지었다. 성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탐스러워서 툭 건드리면 노란 물감이 사방으로 번져나갈 것만 같았다. 봄볕에 데운 흙냄새와 버드나무 새순 냄새, 은은한 꽃향기, 거기에 물 비린 향까지 달큼하니 뒤섞인 날이었다.
동생 중 가장 귀애하는 단이에게 나는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고 녀석이 안달하는 모습은 퍽 귀여웠으니까.
“올해는 둔치 말고 북악산 기슭 골짜기로 가자. 거기 살구꽃이 피었다더라.”
내 말에 녀석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산은 오르기 힘들잖어, 언니. 그냥 둔치로 가아.”
“갔던 델 뭐 하러 또 간다니? 살구꽃은 잠깐인 거 몰라?”
진짜 다투는 줄 아셨는지 누가 간다더냐는 핀잔으로 어머니가 우리 둘을 갈랐다. 퉁명스러웠던 말과 달리 어머니는 다음 날 일찍부터 도시락을 쌌다. 단이와 나도 함께 부산을 떨었다. 어린 동생들도 신이 나 새앙쥐마냥 연신 부엌을 들락거렸다.
흰 쌀밥에 꼬들한 보리밥을 섞어 들기름과 참기름을 몇 방울씩 떨어뜨려 비빈 것을 주먹만큼 뭉치고, 김장 항아리서 꺼낸 묵은지와 콩나물무침을 곁들였다. 찬합에 담긴 계란찜은 노랗게 잘 부풀었다. 된장에 푹 담갔다 꺼낸 오이와 고소한 강정도 한 움큼 담았다. 어머니는 막걸리까지 한 병 챙겼다. 갓 익은 막걸리는 발효가 약한 대신 산뜻한 봄의 기운을 품은 어린 맛일 것이 틀림없었다. 볕 좋은 자리에서 먹으면 진수성찬일 터였다.
돗자리를 둘둘 말고, 보자기로 싼 찬합을 번쩍 들어 올린 아버지 뒤를 따라서 우리는 북악산으로 향했다. 산기슭에 이르자 꽃냄새와 묵은 흙냄새가 엷게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니 낮은 언덕 비탈마다 만개한 진달래가 붉었다. 먼저 온 아이들이 꽃을 따 화관을 엮었고, 그 애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넘실거렸다. 북악산 자락 산길은 야트막한 소로에 불과했다. 하나 오늘은 그 길 위로 꽃잎들이 뿌려져 있었다. 바람이 꽃을 데리고 다니는 듯했다. 살구꽃이었다. 오늘만큼은 이 언덕은 살구꽃의 것이었다.
가지마다 몽글몽글 피어난 꽃잎이 햇살을 받아 희게 빛났다. 그 아래서 벌들이 윙윙 소리를 냈다. 연분홍과 흰빛이 섞여 빛나는 꽃은 햇살에 데워지면 뽀얀 살결 같은 은은한 향을 풍겼다. 갓 찧은 쌀겨에 새벽이슬을 몇 방울 떨어뜨린 듯한 포근하고 고요한 향이었다. 잎 없이 꽃만 피는 살구꽃은 복사꽃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새색시처럼 청초하고 수줍었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가장자리부터 흩날릴 듯 말 듯 조금씩 떨었다. 꽃잎이 살갗에 닿으면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우리는 꽃그늘 아래 자리를 폈다. 나는 팔을 뒤로 뻗고 가만히 앉아 꽃과 햇살을 바라보았다. 옆에선 예까지 일감을 싸 들고 온 어머니가 조용히 바느질했고, 막걸리 한 잔에 벌써 불콰해진 아버지가 흥얼거렸다. 돗자리 위에 꽃잎이 한두 장씩 내려앉았다. 바람, 벌레,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만이 낮게 울렸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조용히 피는 꽃 한 송이만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꽃이 그늘졌다.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며 모든 게 어둠에 묻혔다. 꽃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눈앞의 모든 것이 온통 먹으로 칠한 그림처럼 검게 채색되었다. 아버지가 굳어진 얼굴로 하늘을 보며 갑자기 비가 오시려나,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일식인가, 했다. 나도 이마에 잔뜩 힘을 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시 빛이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들이 금세 다시 뛰놀았다.
돗자리 위에 음식이 펼쳐졌다. 아버지가 조심스레 막걸리를 따라 내게 건넸다. 햇살을 받은 막걸리가 뽀얗게 빛났다. 내가 눈치를 보자 옆 돗자리의 노인이 봄에는 새 술이 약이라네, 하고 호탕하게 참견했다. 단이가 웃으며 막걸리에 연분홍 꽃잎 한 장을 띄웠다. 잔을 받아 들자, 햇살이 막걸리와 꽃잎과 내 뺨을 물들였다. 한 모금 넘기니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적셨다. 어머니가 주먹밥을 한 덩이 건넸다. 아직 온기가 남은 밥에 고소한 기름 향이 깊었다. 밥을 한입 크게 물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밥이 꽉 찬 입안에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 입 베어 물었으나 공기를 삼킨 듯 더욱 허기질 뿐이었다. 그때 무언가 손등을 간질였다. 눈을 내리깔고 보니 하얗게 꿈틀거리는 구더기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구더기를 떨어내며 벌떡 일어서려는데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여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다. 다시 사방이 어두워졌기에 이 모든 게 무슨 영문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손으로 가만히 더듬어 보니 그것은 벽이었다.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닫고 말았다. 돌아오기 싫은 현실에서 또다시 절망이 반복되었다. 어둠에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시간조차 엉켜버린 곳에서.
북악산이 사라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꽃도, 바람도 없는 서대문 형무소의 좁디좁은 감옥, 빛조차 들지 않아 먹방이라 불리는 독방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다. 먹방 안에는 요강 하나와 그 옆에서 들끓는 구더기 떼뿐, 외로운 돌바닥은 축축하고 곰팡내가 진동했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우니 무엇인가 끈적하고 비린 것이 뺨에 닿았다. 어제 곤봉으로 얻어맞고 흘러내린 나의 피였다. 깊은 그리움으로 잠시 잠깐 잊었던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고문의 흔적이 아물지 않은 탓이었다. 무릎뼈가 으스러져 다리를 굽힐 수 없었고, 숨 쉴 때마다 찌릿한 아픔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휘저었다. 통증보다 무서운 건 허기였다. 위벽이 서로 달라붙은 듯 쓰라렸다. 침을 삼켜보려 했지만 마른 우물 바닥을 긁듯 목구멍이 갈라졌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을 때,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그들이 칼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아버지는 나를 뒤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어머니는 동생들을 품에 안고 피를 토했다. 나만 살아 이곳에 끌려와 매일 죽어갔다.
북악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개울을 건너며 동생은 진달래 몇 송이를 꺾어 내 치마폭에 넣었다. 그날의 향기와 빛을 아직 기억한다. 흙냄새와 따스한 햇살, 그리고 꽃잎이 입술에 닿던 감촉까지도. 힘겹게 모로 누워 나는 노래했다.
“어둠이 나를 삼켜도 내 눈은 해를 안으리. 쇠창살 너머 흙 한 줌, 거기다 꽃을 묻었다. 울지 않으리, 꺾이지 않으리. 피로 물든 이 땅에 꽃이여 피어라. 내 뼈가 썩어도, 내 살이 문드러져도.”
칠흑 같은 어둠이 집어삼켜도 나는 다시 노래할 것이다. 몇 번이고 그날을 다시 살고 살아낼 것이다. 가장 깊은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꽃이 필 것이니. 내 반드시 북악산에 갈 것이다.
천천히 입을 벌렸다. 이끼처럼 눅눅하고 후끈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조금 전 떨어낸 구더기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짝 마른 혀 위에서 살진 구더기가 꿈틀거렸다. 토도독 터진 구더기의 살과 즙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살 것이다. 살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어머니의 원대로, 나는 살 것이다.
공동기획: 조선일보·국가보훈부
3·1 운동
1919년 3월 1일 시작된 전국적·전국민적인 독립 운동. 5월 말까지 전국에서 1744회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됐다. 일제는 무력 발포(254건)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탄압했다. 참가자들은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3월 4일 평남 원장·사천 시장에서 이뤄진 독립 만세 운동과 관련해 4명이 사형, 16명이 무기징역 내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남아 있는 일제의 ‘감시 대상 인물 카드’ 4855건 가운데 3·1운동 수감자는 893명(18%)에 달한다.
소설가 소향
202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화원귀 문구>, SF소설집 <모르페우스의 문>, 장편동화 <간판 없는 문구점의 기묘한 이야기>, <또 정다운>을 썼다.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촉법소년> 등 다수의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8/30/2CXBLK43IZEKRPPHHGRGMM5ID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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