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 뉴욕 FIT 교수·디자인
입력 2017.08.08 03:11
美 오리건주 작은 마을 포틀랜드… 친환경 브랜드로 도시 변모
도서관 같은 세계 최대 서점, 푸드 트럭 문화 처음 생긴 곳
와이너리·올리브 농장 '쾌적'… 나이키·킨포크 창업 바탕 돼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에 위치한 포틀랜드. 독립적인 문화와 시민들의 높은 지적 수준으로 알려진 도시다. 이곳에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서점이 있다. 파월(Powell's) 서점이다. 시내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데, 하루 7000여 명의 손님을 받고 1000여 권의 중고 서적을 구입한다. 내부에는 아홉 가지 색상을 기준으로, 3500가지의 주제로 분류된 150만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웬만한 도서관과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책"이라고 대답한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책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도시는 커피도 발달한다. 포틀랜드시의 별명을 딴 '스텀프타운(Stumptown)' 커피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파월서점, 스텀프타운커피, 영화 구니스
사실 포틀랜드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제재업 말고는 특별한 산업이 없는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였다. 이런 조건에서 오늘날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친환경 도시 디자인이다. 공항에서 들어오는 싸고 빠른 모노레일, 시내에서 차를 운전할 필요 없도록 잘 만들어진 대중교통, 태양열 주차기, 충분한 녹지와 옥상 정원 등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 결과 지금 이곳은 미국에서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강하고 유기적인 도시가 되었다.
포틀랜드는 바다와 산, 강의 쾌적한 자연환경에 둘러져 있다. 가까운 거리에 해안가, 와이너리, 올리브 농장 등이 즐비하다. 시내에서 이런 곳으로 향하는 길 또한 아름답다. 흔히 미국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맥도널드 정도인 것에 비해서 이곳의 휴게소는 오두막으로 지은 에스프레소 숍이다. 대단한 내공이다. 이곳 서부 해안은 해수욕장이나 관광지로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둔다. 영화 '구니스(The Goonies)'에서 보였던 바위와 해안 그대로다. 태평양이 보이는 바람 부는 계곡에서 자연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좋은 환경에서 생산되는 풍부하고 신선한 식재료가 있어서 음식 문화 역시 발달했다. 도심에 약 40여 개가 있는 그린 마켓의 야채와 과일은 미국 전역에서 최고 신선도를 자랑한다.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늘 이곳에서 재료를 구입하여 고객에게 건강한 식단을 제공한다.
포틀랜드 음식 문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카트(cart)'라 불리는 푸드 트럭이다. 현재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푸드 트럭의 문화를 가장 먼저, 가장 멋있게 발전시킨 도시가 바로 여기다. 미국의 다른 도시들이 길거리 음식으로 핫도그나 프레츨 정도를 팔던 시절, 이곳에서는 창조성과 기발함으로 푸드 트럭에 맞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푸드 트럭에서 유행하는 독일 소시지, 피시 타코, 데판야키, 와플, 올리브 튀김 등이 이미 수십 년 전 여기서 실험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농의 카오 만 가이(Nong's Khao Man Gai)'로 메뉴는 '치킨과 밥' 하나뿐이다. 현지인들에게 '마약 치킨'이라 불리는데, 너무 유명하여 창립자 농은 테드(TED)에 강사로 초청되어 연설까지 하였다. 포틀랜드 푸드 트럭들의 독특한 점은 도심의 노천 주차장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도심의 공터가 차들로 빽빽하게 차 있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길거리에 푸드 트럭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는 풍경도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빈티지 자동차를 개조한 다양하고 예쁜 푸드 트럭이 주차장을 둘러쌈으로써 두 가지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도시의 이미지와 환경을 생각한 구상이다. 길거리 음식 문화와 영세 상인들, 도시 디자인을 지혜롭게 풀어낸 걸작 행정이다.
포틀랜드 푸드트럭 카트, 프레츨, 독일소시지
피시타코, 데판야키(일본어: 鉄板焼き), 올리브튀김
농의 카오 만 가이, 치킨과 밥
포틀랜드는 커피와 음식, 책의 전통이 강한 도시다. 시민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찾고, 책을 많이 읽으며 늘 주변의 자연을 가까이한다. 틈틈이 에스프레소와 수제 맥주, 피노누아 와인을 즐긴다. 음식은 신체의 일부가 되고 거리의 환경은 내가 호흡하며 사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포틀랜드의 풍경은 시내를 걷는 보행자가 되는 시점에서 가장 아름답다. 도시가 사람 중심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는 소위 '드레스 코드'라는 것이 없다. '보이기 위해서'의 겉치레와 격식이 전혀 없다. 시민들은 캐주얼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노력한다. 음식과 지식
을 제대로 먹고 마음의 중심에 자연의 고요함을 간직한다. 편안하지만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런 당당함의 표현이 도시의 정체성과 에너지다. 이곳에서 건강한 활동을 장려하는 '나이키(Nike)',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에이스(Ace) 호텔'이나 '킨포크(Kinfolk)' 잡지 등이 창업된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피노누아 와인, 에이스호텔, 킨포크(Kinfolk)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7/2017080703051.html
킨포크(kinfolk): 친척ㆍ친족을 뜻하는 명칭으로, 가까운 사람을 의미하지만 최근 본뜻에서 나아가 '느긋하면서도 소소한 생활 방식'을 일컫는 신조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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