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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도로 위 흉기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24.02.26. 20:48 업데이트 2024.02.27. 01:48

일러스트=이철원


1980년대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일어난 사고다. 차를 몰던 남편이 갑자기 쾅 하는 소리에 놀라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자리에 탄 아내가 숨져 있었다. 앞서 달리던 화물차 바퀴에서 튀어나온 돌이 차 유리를 뚫고 아내를 친 것이다. 뒤로 튀어나온 돌의 속도에 차량 속도까지 더해 끔찍한 사고가 난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런 날벼락이 화물차 주변엔 상존한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에서 수거한 낙하물은 연간 20만~30만건에 이른다고 한다. 차량 부품·합판·의자에다 가끔 돼지도 떨어진다. 시속 80㎞만 넘어도 전방 화물차에서 떨어져 느닷없이 날아오는 작은 물건이 뒤따르는 차량엔 치명적 흉기가 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속도로에서 적재물이 떨어져 발생하는 사고로 숨질 확률은 28.5%.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의 2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화물차에선 어마어마한 ‘흉기’도 떨어진다. 3년 전엔 고속도로를 달리던 화물차에서 13t짜리 강철 코일이 굴러 떨어져 일가족 4명이 탄 승합차를 덮쳤다. 어린 딸이 숨지고 어머니가 크게 다쳤다. 지난해엔 중부고속도를 달리던 화물차에서 아스팔트 등을 다지는 10t짜리 롤러차가 그대로 떨어졌다. 뒤따르던 차들이 이를 피하려다 서로 부딪치면서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엊그제 경부고속도로 경기 안성 부근에선 화물차에서 빠진 바퀴가 반대 차선 관광버스를 덮쳐 2명이 숨지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빠진 바퀴는 버스 앞 유리를 뚫고 지나가 중간 통로까지 가서 겨우 멈췄다고 한다. 화물차 바퀴가 100㎏ 안팎인데 차량 속도까지 더해 충격이 커졌다. 2018년에도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던 화물차에서 예비 타이어가 떨어져 뒤따르던 승용차, 트럭 등 4대와 연쇄 충돌해 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한국에서 화물차는 ‘도로 위 흉기’라 부른다. 안전 점검이나 적재 불량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재 문제만 해도 현행법은 ‘화물에 덮개를 씌우거나 묶는 등 확실하게 고정해야 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 기준도 없다. 10여 년 전 유럽에서 도로를 달리는 거의 모든 화물차에 덮개를 씌운 것을 봤다. 일본도 그렇다. 낙하물 사고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게 돈이 들어 어렵다면 규정을 세밀하게 다듬고 단속이라도 강화해야 한다. 그에 앞서 화물 차주들이 수시로 바퀴 나사를 조이고, 묶는 끈도 조여야 한다. 화물차를 언제까지 공포의 대상으로 남겨둘 건가.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2/26/ETG5Z3JJHRDBVKU7I7X6TWBI7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