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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19금 뺨치는 ‘알·테·쉬’ 앱... ‘미끼상품’ 음란물 마구 쏟아져

송혜진 기자
입력 2024.02.27. 03:18 업데이트 2024.02.27. 05:06

中 이커머스 업체몸집 불리기 위해
음란·불법상품들 마구잡이로 판매

일러스트=이철원


“성인 인증 없이도 이상한 상품을 막 볼 수 있더라고요.”

최근 유명한 중국 온라인 쇼핑 앱인 알리익스프레스를 검색하던 직장인 이모(37)씨는 추천 검색어에 ‘흥분 유도제’ ‘섹시돌’ 등이 올라온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앱을 지웠다고 했다. 혹시나 아이들이 휴대폰을 만지다가 볼까 봐 걱정돼서다. 이씨는 “(중국 이커머스 앱에서) 어른인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이상한 물건을 쉽게 검색하고 살 수 있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권모(48)씨는 최근 주변 권유로 휴대폰에 쇼핑 앱 테무를 깔았더니 ‘밸런타인데이 위한 약’ 같은 팝업 광고가 수시로 날아와 당황했다고 한다. 권씨도 결국 앱을 지웠다. 그는 “보기도 싫은 선정적 광고가 시도 때도 없이 뜨는데 이걸 그냥 두고 봐야 하느냐”고 했다.

최근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몸집 불리기를 위해 ‘19금(禁)’ 의 선정성과 유해성이 심한 상품까지 마구잡이로 판매·광고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알·테·쉬’로 불리는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같은 업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에선 애초 판매가 금지됐거나 제한된 상품도 이들 업체 모바일 앱이나 웹에선 쉽게 검색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문제가 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해 조사·경고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고, 실제 물건을 파는 플랫폼에 입점한 해외 업체들에 대해선 규제할 법적 근거가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고 했다. 해외 이커머스 업체들의 불법적인 제품 판매에 대해 우리 정부가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휴대전화 알림이 울리면서 ‘홀리는 속옷’ 이라는 팝업 광고가 오더라고요.”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에 가입했다는 주부 A씨 얘기다. 그는 “수시로 선정적인 광고가 뜨는 걸 보면서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내 아이가 열까 두려운 중국 쇼핑 앱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들은 국내에서 무서운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알리익프레스의 월간 활성자(MAU)는 약 717만명으로 1년 사이 두 배가량 뛰었다. 또 다른 중국 이커머스 업체 테무의 지난달 앱 신규 설치 건수는 약 222만건으로 국내 앱 중 1위였다. 이들 업체는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며 전 세계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현실은 상당수 소비자가 중국 이커머스 앱에 가입하면 선정적인 검색어, 혹은 팝업 광고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4일 알리익스프레스에 접속해 봤더니 ‘매춘 의상’ ‘여성 전신 인형’ ‘절정 드레스’ 같은 추천 검색어가 떴다. 쿠팡·지마켓·SSG 같은 국내 대형 이머커스 업체의 경우 음란물·청소년 유해 상품·성기구 등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를 받고 있다. 판매가 가능한 일부 상품의 경우도 성인 인증을 거쳐야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앱에 올라와 있는 상품은 성인 인증 없이도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유사 총기, 신고하지 않은 각종 의료 기기나 건강식품, 청소년 유해 약물도 중국 이커머스 쇼핑몰에선 쉽게 검색하고 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에선 의료기기법이나 약국법, 건강기능식품법 등에 따라 식약처 기준을 통과한 상품만 판매할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리얼 총기’라는 검색어로 상품을 검색해 봤더니, 비비탄 총알 등을 넣어 멀리까지 쏠 수 있는 상품이 3만9200원에 검색됐다. 장난감 총알이지만 가까이에서 맞으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 테무에선 ‘테이저 건’과 거의 흡사한 상품을 1만9651원에 구매 가능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에선 국내는 물론 유럽과 미국·일본 등에서 식품 원료로 사용이 금지된 동남아산 불법 정력제인 ‘통캇알리’ 등이 들어 있는 ‘남성기능강화보충제’ ‘최음제’ 등도 팔리고 있다.

◇정부 규제 못 미치는 외국 이커머스

중국 이커머스 업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제대로 된 규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외국 플랫폼사와 여기에 입점한 해외 판매사가 편법으로 영업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마땅하지 않고, 있더라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마땅히 대처 방안이 없다”고 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법에 따라 시정명령 혹은 과징금 조치를 받게 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정부가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느냐도 불투명하다. 한 이커머스 전문 변호사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법을 안 따라서 과징금을 부과받아도 안 내고 버티면 우리 정부가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고 했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은 국민 정서, 민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문제가 될 상품을 걸러내고 알고리즘을 정화하는 데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중국 업체들은 놔두면서 국내 업체만 규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market_trend/2024/02/27/OXHMVTSYXNDKXGNTKXU2ZPP3Z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