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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디플레이션’ 수출하는 중국... 내수 침체되자 헐값 공세

친중 국가까지 “중국산 막아야”
이정구 기자
입력 2024.03.23. 03:00 업데이트 2024.03.23. 06:43

일러스트=이철원


“중국산 제품의 약탈적 영업에 맞서 국내 시장을 지켜야 한다.”

중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원으로 대표적 친중(親中) 행보를 보여온 브라질의 화학업계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브라질 정부는 중국산 철강·석유화학 제품 등에 대해 반(反)덤핑 조사에 나섰다. 중국의 초저가 공세가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국내 양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중국산 등 수입 강판에 대한 덤핑 조사 신청을 검토 중이다. 실제 올 1~2월 중국의 철강 수출량이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치인 1590만t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 산업뿐 아니라 주요 산업에서 초저가 중국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중국발(發)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수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내수 소비가 죽은 중국이 재고를 헐값에 해외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전기차·배터리·석유화학·유통 등 주요 산업에서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시장에 풀어버린 초저가 제품은 단기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낮아져 좋지만 기업과 산업 전반에는 악재다. 기업은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려면 수익을 포기하고 밑지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부채가 늘어난 기업부터 경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의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가 이달 7일 발표한 올 1~2월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총 수출입액은 6조6100억위안(약 1210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 늘었다. 특히 수출액은 3조7500억 위안(약 686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3%나 늘었다. 집적회로, 선박, 일반 기계 및 장비, 컴퓨터, 자동차 부품 등 전기 기계 제품과 의류, 섬유, 플라스틱 제품, 가방, 장난감, 가구 등 노동집약적 제품의 수출이 모두 증가했다. 중국 상무부 관계자는 두 달간 수출 실적에 대해 “시장을 다원화하고 수출 구조를 최적화한 덕분”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변 국가들의 반응은 다르다.

◇30년 만에 ‘2차 차이나 쇼크’, 경기 침체 우려

1990년대 후반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한 ‘1차 차이나 쇼크’ 때, 중국산 저가 생산품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누르는 효과로 전례 없는 장기 호황을 만들었다. 다만, 이면에는 각국의 제조업 기반 붕괴가 이어져 산업 경쟁력 약화도 불가피했다.

현재 당면한 ‘2차 차이나 쇼크’는 장기 경기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저가 제품이 대량 수입되면 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해당 국가의 산업 기반은 흔들린다. 당장은 값싼 제품을 소비하는 장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에서 밀린 자국 산업이 붕괴하면 고용 감소, 소비 감소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중국의 저가 철강, 석유화학 제품은 동남아 시장 질서를 망가뜨린 데 이어 중남미까지 퍼졌고,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초저가 중국 소비재도 북미를 포함해 글로벌 전역에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수요가 둔화한 전기차, 배터리도 가격을 재차 내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초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이 선진국을 넘어 개발도상국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1990년대보다 더 광범위한 영향을 세계 경제에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EU 이어 친중 브라질도 규제 나서

주요 국가들은 자국 산업 붕괴를 우려하며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부터 중국산 철강에 12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고 있고, 멕시코 등 제3국 공장을 통한 중국 기업 상품 유입도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작년 9월 “중국산 전기차가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유럽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불법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던 유럽연합(EU)은 올 하반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브라질 정부도 자국 산업계의 요청에 따라 지난 6개월 사이 철강, 화학제품, 타이어 등 최소 6개 분야에서 반덤핑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 철강업계는 정부에 중국산 등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해 9.6%에서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發 ‘디플레이션 수출’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인플레이션(in flation)의 반대 개념으로,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뜻한다. 최근 중국은 경기 침체로 내수 소비가 부진해 재고가 폭증하는 디플레이션을 겪게 되자 해외에 중국 생산품을 헐값에 내다 팔고 있다. 이로 인해 헐값 중국 상품을 수입하게 된 나라들이 자국 내 물가 하락으로 경제 회복이 더뎌지는 디플레이션을 겪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4/03/23/NE75NOO2SJGZVBPY4VX2VTZM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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