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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천덕꾸러기 된 ‘민변’

황대진 논설위원
입력 2024.03.24. 21:18 업데이트 2024.03.25. 01:35

일러스트=이철원


1984년 9월 1일부터 3일간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이 망원동이다. 330㎜가 넘는 집중호우에 유수지 펌프장 수문이 붕괴돼 1만여 가구가 물에 잠기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만 해도 천재(天災)로 인식됐지만 조영래 변호사는 달랐다. 부실 공사를 하고 유수지 관리를 잘못한 서울시와 건설사의 인재(人災)라며 주민을 모아 집단소송을 냈다. 수임료는 승소하면 받겠다고 했고, 결국 주민 1만2000여 명이 53억여 원을 배상받았다.

▶이 소송을 계기로 모인 변호사들이 만든 단체가 후에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됐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순우리말로 ‘모임’이라고 이름 붙인 게 조 변호사다. 민변 초기엔 ‘인권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모임 목적에 걸맞게 활동했다. 박종철 고문 치사, 부천서 성 고문 등 시국 사건 변호를 도맡았다. 돈이 되지 않아 일반 변호사들이 맡지 않는 사건이 이들 몫이었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민변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는 ‘민변 전성시대’였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요직을 장악했다. 행정부의 민간 개방직, 각종 진상조사위원회도 민변 차지였다. 21대 국회에도 11명이 들어갔다. ‘코인 거래’ 김남국 의원, ‘짤짤이’ 최강욱 전 의원 등 대부분 민주당 소속이어서 ‘민주당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민변이 권력화되면서 각종 문제가 나타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의혹, 이용구 전 법무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등 ‘반인권’ 행태가 불거졌다. 과거사위에서 자기가 조사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챙겼다가 처벌받은 사람, 강제 징용 소송을 대리하며 제3자 보상안을 거부하다가 막상 피해자가 보상금을 타내자 자기 성공 보수부터 떼어 간 사람도 민변 출신이다. 간첩 혐의자 변호를 도맡아 ‘종북’ 논란도 일었다.

▶이번 총선에서 민변은 위성정당에 공개 반대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지자 집행부가 앞다퉈 공천을 신청했다. 박용진 의원 지역구에 공천받은 민변 변호사는 성범죄 전문 변호 이력이 드러나 물러났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10채에 38억원을 ‘갭투자’하고 이를 숨겼다가 공천이 취소된 후보도 민변 출신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이름이 높았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뒀다. 생전에 “모든 권력은 놔두면 남용된다”며 “내가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용의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민변 출신들이 새겨봤으면 하는 말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3/24/7VX3Q6PRXNAOZHMMATYVCPH42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