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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의대 ‘지방 유학’ 어디로?” 맘카페선 열띤 토론

수도권 학부모, 의대 증원 결정에 들썩… 교육청에 문의도
표태준 기자 김병권 기자
입력 2024.03.23. 03:00

일러스트=이철원


서울 서초구에 사는 50대 여성 A씨는 올해 초등학생 둘째 아이를 강원도 춘천으로 전학 보낼 예정이다. 지난 20일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고 82%를 지방대에 배정하자 자녀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에 보내려고 이사를 결심한 것이다. A씨는 “마침 대학교수 남편이 강원도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면서 “평일엔 춘천에서 학교 보내고 주말엔 서울로 데려와 강남 학원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녀를 의대에 쉽게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하는 이른바 ‘지방 유학’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인재 전형은 의대가 있는 지역 출신들을 별도로 뽑는 전형이다. 예컨대, 충북대 지역인재전형은 충북, 충남, 세종, 대전에서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다. 일반 전형보다 경쟁률과 합격 커트라인이 낮아 비교적 의대를 쉽게 갈 수 있다. 현재 지역 대학들은 정원의 40%(강원·제주는 20%) 이상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한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25학년도부터 6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내년도 의대 신입생 5058명 중 최소 2539명을 지역 출신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지역 학생들이 의대 가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이달부터 각 시·도 교육청에는 수도권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지방 유학’ 상담이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다.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에 가려면 올해 초등 6학년 이하 학생이 지방 유학을 떠나야 한다. 2028학년도부터는 지방의 중·고교를 6년간 다녀야 지역인재전형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수도권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 깊게 보는 지역은 충청 지역이다. 지난 20일 한 입시 커뮤니티에서 ‘의대 증원, 어디로 이사 가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는데, 순식간에 수십개 댓글이 달렸다. 그 중 ‘충청이 좋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수도권과 가깝고 충청도에 의대가 7개나 몰려 있어 의대 문호가 넓기 때문이다. 특히 충북대 정원은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로 늘었다. 충남 천안 서북부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윤석호(54)씨는 “이달 들어 지역인재전형 때문에 천안으로 이사 오고 싶다는 문의가 5건 들어왔고, 실제 매물을 보러 온 이도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50대 B씨는 작년 11월 경기 성남 분당에서 천안으로 이사를 했다. 정부가 작년 10월 “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다. B씨는 “직장이 강남이라 매일 SRT를 타고 출퇴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아이 미래를 위해서라면 감내할 만하다”며 “정부가 충청 지역 의대 정원을 많이 늘려줘서 기뻤다”고 했다.

부산교육청에도 ‘유학 상담 전화’가 매일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청에 직접 찾아온 학부모도 있다. 부산은 동아대 89%, 부산대 80% 등 지역인재전형 비율이 다른 지역(평균 40%)보다 높은 편이다. 입시 업계는 내년엔 부산·울산·경남 지역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기존 299명에서 588명까지 뛸 것으로 예측한다. 강동완 부산시교육청 학력개발원 연구사는 “서울 학부모와 상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방 유학’ 열풍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재순 세종시교육청 진로교육원 연구사는 “의대 관련 유학 상담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지금 초6이 대입을 치르는) 6년 뒤에도 지역인재전형 정원이 계속 유지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부모들에게 시원하게 답을 해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사립대 한 교수는 “초등학생은 진로를 정하기 너무 어린 나이고, 의대 관련 입시 제도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면서 “의대 때문에 애를 전학시키고 이사까지 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인재전형
의대가 있는 지역 출신 학생을 별도로 뽑는 전형. 현재는 고교 3년간 지역 학교를 다닌 학생이 대상이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중·고교 6년을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4/03/23/INFZE3MNFNEKDCLPQLTQGE34Q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