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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르포 대한민국] 인천대교 앞엔 '중고차의 바다'… 작년 수출량만 63만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입력 2025.02.24. 00:03 업데이트 2025.02.24. 10:59

9년 사이 수출량 3배 이상 늘어… 세계 4위 중고차 수출국 부상
중동서 내구성 좋은 국산 1톤 트럭 인기, 판매가격 부쩍 높아져
세계를 상대로 한 상인들의 성과… 이젠 성장 산업으로 체계화 필요

 

2022년 3월 인천광역시 옛 송도유원지 공터에 인천항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기 위해 선적을 기다리는 중고 자동차들이 가득 차있다. /오종찬 기자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대교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다 보면 오른쪽으로 많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중고차 수출 단지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나대지에 컨테이너 사무실이 전부인 곳이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900여 사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해외 바이어들은 원하는 차를 찾으면 즉석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건넨다. 옛날 장터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수출 현장인 것이다.

이렇게 수출되는 중고차는 2024년 기준으로 약 63만대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51억달러(약 7조4000억원)에 육박한다. 수출은 매년 증가세다. 2015년 20만대를 수출해 10억달러를 벌어들였는데, 2024년에는 대수로는 약 3배, 금액으로는 5배 이상 증가했다. 신차 수출이 2015년 300만대에서 2024년 280만대 수준으로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세계 중고차 수출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비율은 8% 수준으로 EU(49%), 일본(26%), 미국(18%) 다음 넷째다.

그래픽=이철원


2024년에 가장 많은 중고차가 수출된 곳은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다. 총 12만4905대가 수출됐다. 다음으로는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8만558대), 튀르키예(7만4074대)의 순서다.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알바니아, 러시아 등에도 각 2만대 이상의 중고차가 수출됐다. 아직 내전 중인 리비아에 많은 중고차가 수출되는 이유는 이곳이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리비아는 내전으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태라서 제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없어 차량 가격이 저렴하다. 리비아로 수출된 자동차는 튀니지, 알제리, 말리, 니제르, 차드, 수단 등으로 향하고 있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중고차는 200만~300만원 수준의 저가격 차량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24년에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으로 수출된 중고차는 합쳐서 10만대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많은 물량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러시아에 대한 배기량 2000cc 이상의 자동차 수출은 금지되어 있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로 직접 수출되는 중고차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연간 2000대 수준으로 미미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10배 이상 급증해 2024년에는 2만8000대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 정세의 변화는 국내 중고차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작년 12월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2011~15년 연식의 차량 가격이 급등했다. 300만원 수준이던 차량 가격이 500만원으로, 500만원이던 차량은 900만원으로 상승했다. 이유는 시리아 내전의 종식이었다. 반군의 공세에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고 내전이 마무리되자 시리아에서의 차량 구매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중동의 바이어들이 가격 불문하고 물량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내전 중에도 한국에서 시리아로 향하는 중고차는 많았다. 시리아 북쪽에 있는 튀르키예로 수출되는 중고차는 2020년까지만 해도 3940대 수준이었지만 2023년 2만8000대 수준으로 급증했고 2024년에는 7만4000대까지 증가했다. 한국중고차유통연구소 신현도 소장에 따르면 튀르키예로 향한 중고차 가운데 상당수는 친튀르키예 반군이 통제하던 시리아 북부 지역을 경유해 시리아 전역으로 판매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1톤 트럭은 내구성도 좋고 무엇보다 과적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반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계약이 체결된 중고차 가운데 자동차 운반선(RORO: roll-on roll-off)을 이용해 수출되는 비율은 20% 수준이다. 나머지 80%는 컨테이너에 담겨 수출된다. 비좁은 컨테이너에 한꺼번에 몇 대의 차량을 집어넣고 그 사이에 각종 부품까지 채워 넣는 모습은 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출되는 중고차의 76.5%는 인천항을 이용한다. 수출 단지와 항구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운송 비용이 저렴하고 각종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중고차 수출 단지 조성을 위해 인천항만공사가 추진하는 스마트 오토밸리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다. 인천 수출용 중고차 야적장 부지에 대한 도시 개발도 가시화되면서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하지만 마땅한 곳을 확정하지 못했다. 중고차 수출을 위한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출 규모가 계속 확대되기는 어렵다.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도 많다.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차량을 매입하면 즉시 차량 등록을 말소하고 있다. 수출업체 앞으로 등록하는 것이 신뢰성 확보와 수출 이후 매입부가세 환급 등에서 유리하지만 등록을 유지할 경우 자동차세 납부와 자동차보험 가입 부담 때문에 즉각 말소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렇게 말소된 차량을 1년 이내에 수출하지 못할 경우 수출 이행 신고 규정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간주돼 대당 최대 5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해야 한다. 과태료 납부 시한이 다가오면 업체들은 덤핑 수출, 폐차, 신규 부활 등록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업체들은 손실을 보게 된다. 일본의 경우 자동차 일시 말소 제도가 있어 수출 여부가 확인되면 확정말소가 진행되고 그렇지 않으면 복원되도록 하는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중고차 수출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몸집을 불리고 싶어도 금융 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수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등록이 말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담보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담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고 대형 업체가 생겨나기 어렵다. 무관심 속에서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상인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중고차 수출은 성장해왔다. 이제 제대로 된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고 키워 나가야 할 때가 됐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2/24/XEFGLRMO2NECXFDJQ6P5NDU7T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