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기자
입력 2025.02.25. 00:08 업데이트 2025.02.25. 09:29
지난해 말 2032년 지구 충돌할 수 있는 소행성 '2024 YR4′ 첫 관측
케플러가 1609년 발표한 케플러 방정식으로 소행성 궤도 예측 가능
장애에 굴하지 않은 열정과 호기심이 과학과 인류의 미래 바꿔놓아
157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케플러는 신동으로 유명했다. 여섯 살 때 혜성을 본 뒤로는 별과 우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배경이 발목을 잡았다. 병약하기까지 했던 케플러가 꿈꿀 수 있던 직업은 성직자뿐이었다. 튀빙겐대 신학과에 입학한 케플러는 인생을 바꾼 수업을 만난다. 신이 창조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天動說)을 가르치는 강의에서 케플러는 당시 배척받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을 알게 된 것. 이후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학파를 자처하며 행성을 비롯한 우주 천체의 움직임을 밝히는 데 평생을 바친다.
오늘날 과학 사가들은 그를 신중한 관찰과 엄격한 검증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아버지이자 현대 과학의 창시자라 칭송한다.
500년 가까이 지난 역사 속 인물 케플러가 과학계에 다시 소환됐다. 지난해 12월 27일 칠레의 한 천체망원경이 처음 포착한 지름 40~90m 크기 소행성 ‘2024 YR4’ 덕분이다. 발견 이틀 전 지구에서 달 거리의 두 배가 넘는 82만8800km 지점을 지난 뒤 점차 멀어지고 있다. 태양계를 떠도는 수백만 소행성과 별다를 게 없는 2024 YR4가 화제가 된 것은 지난달 29일 유엔 자문 그룹 국제소행성경보네트워크(IAWN: International Asteroid Warning Network)가 “2024 YR4가 2032년 12월 22일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1.3%에 이른다”는 발표를 내놓으면서다. IAWN은 지구 충돌 가능성 1%가 넘는 소행성을 발견하면 유엔 회원국에 알리는데, 이번이 역사상 첫 경고였다. 이 확률은 지난 18일 3.1%까지 치솟았고, 다음 날 1.5%로 떨어지는 등 급변하고 있다. 24일 기준으로는 0.28%이다. 과학자들은 티끌보다 작은(우주 전체로 보면) 소행성의 앞날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케플러의 유산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케플러는 움직이는 천체는 타원·포물선·쌍곡선 등 세 가지 가운데 한 궤도를 돈다고 주장했다. 지구가 원에 가까운 타원 궤도를 도는 식이다. 케플러는 1609년 발표한 신천문학(Astronomia Nova)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 천체의 궤도를 예측하는 ‘케플러 방정식’을 발표했다. 초보적인 광학 망원경뿐이던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시대는 수백 년간 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거대 우주 망원경의 시대가 됐지만, 케플러 방정식은 여전히 천체의 움직임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09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외계 행성 탐사를 위한 케플러 망원경을 발사하며 케플러의 이름을 붙였다. 인류 최고의 숙제를 풀려는 도전이 케플러의 업적처럼 위대한 결과로 이어지길 기원한 것이다.
과학계는 2024 YR4 추적을 위해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영화 ‘딥임팩트’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 YR4는 충돌 시 지구 멸망까지는 아니지만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크기로 ‘시티 킬러(city killer)’라 불린다. 2024 YR4 크기의 소행성이 1908년 시베리아에 충돌해 폭발한 ‘퉁구스카 대폭발’의 경우 핵무기와 비슷한 위력으로 뉴욕 면적의 2배가 넘는 숲을 사라지게 했다.
2032년 2024 YR4의 충돌 예상 지역에는 인도 뭄바이, 콜롬비아 보고타 같은 대도시가 포함돼 있다. 다만 과학자들은 과도한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충돌 확률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 자체가 관측 기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2024 YR4에 대한 관측 자료가 쌓일수록 더 정확하게 케플러 방정식을 풀어내 위협이 실제가 될지 알 수 있다. 야구 선수가 공을 더 많이, 오래 쳐다볼수록 공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로서는 관측이 이어지면 결국 충돌 확률은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케플러는 어린 시절 앓은 천연두로 인해 심각한 근시에 복시였고, 손가락 장애까지 있었다. 관측이 천문학의 전부이던 시대에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다른 과학자의 관측 자료를 파고든 끝에 천체의 미래를 읽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굴하지 않는 열정과 지적 호기심 덕분에 우리는 행성의 충돌 가능성을 수년 전에 내다보고 대비하는 세상에 살게 됐다.
요하네스 케플러 ![]() |
코페르니쿠스 ![]() |
2024 YR4 ![]() |
신천문학 ![]() |
케플러 방정식 ![]() |
갈릴레이 ![]() |
케플러 망원경 ![]() |
딥임팩트 ![]() |
퉁구스카 대폭발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2/25/RWWJPL43KFD2RJTE57T4PKT4Z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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