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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민심은 길 잃고 여론은 혼탁, 그 사이로 폭주하는 정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5.10.02. 23:45

감 못 잡는 야당과 민심 무시하는 여당의 싸움
막말이 난무하는 국회는 '쇼츠'용 스튜디오 같아
대화 실종되고 루머 증폭되면 전체주의로 흘러

우리가 설계한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덜내지 말고 다음 '세입자'에게 온전히 돌려주자
여당은 폭주 자제하고 야당은 더 건실해지기를

/일러스트=이철원


구글 검색창에 영어로 ‘한국 의회(Korea parliament)’를 치면 ‘싸움(fight)’이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된다. 알고리즘 추천 콘텐츠는 그동안 외신을 타고 전해졌던 국회의 극렬한 몸싸움 현장 영상들이다. 의사봉이 있는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국회의원들이 몸으로 막고 부딪치며 서로 엉겨 있는 모양은 미식축구를 무색하게 하는 볼거리다. 그렇다고 특별히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 의회에서는 흔한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후발 민주국가의 역동성과 절박함이 버무려진 그런 장면도 이제는 추억으로 사라질 것 같다. 요즘 국회에서 몸싸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싸움이란 상대가 비슷한 체급일 때 성립된다. 거대 여당은 몸을 쓰지 않고도 모든 일을 처리할 만큼 힘이 세졌고, 야당은 그 싸움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 지나가는 행인을 불편하게 한다. 요즘 국회는 인터넷 쇼츠(짧은 동영상) 촬영용 고성, 강성 지지층 겨냥 사운드바이트(짧은 클립) 막말이 무한 재생산되는 정치 스튜디오로 전락했다. 미디어 정치꾼에게 카메라 각이 안 나오는 몸싸움은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몸싸움을 벌이던 패기 만만 흘러간 정치인들이 그립다.

민심이 어디 있는지 감조차 못 잡는 야당, 그리고 민심을 무시해도 될 만큼 힘이 세진 여당 사이에서 민심이 길을 잃고 헤맨다. 본디 ‘민심(vox populi)’이란 왕정 시대 용어다. 조선 시대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들 사이에도 민심은 있었다. 언론도, 여론조사 기관도 없었던 시절에도 선왕(善王)은 그 민심을 듣기 위해 야행(夜行)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게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말로 대체된 것은 시민사회가 도래한 유럽 계몽주의 시대 이후다. 오늘날 민주국가는 여론조사도 하고 자유언론도 보장한다. 모두 여론의 말길을 터서 정치로 수렴하게 하기 위한 근대적 장치다.

왕이 선하면 왕정도 나쁘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점철된 정치는 왕정보다 악취를 풍긴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막무가내 의회도 그에 못지않다. 민심은 그 근처에도 못 가고, 여론은 왜곡용 선전물로 둔갑해 나오는 우리 국회를 더 이상 민주 국가의 국회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힘 과시에 여념 없는 여당은 입주하자마자 집 구조부터 인테리어까지 싹 뜯어고치는 세입자를 연상케 한다. 제 집도 아닌데 반대하고 타협해야 할 대상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한다. 예산을 뚝 떼어 가고, 큰 방을 둘로 쪼개고, 있던 방은 없앤다. 그리고 위험물을 소지하고 있어 거리를 뒀던 불량 이웃과도 서로 비밀번호를 주고받을 태세다. 새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거나 좋은 방에 재배치된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오래전 집을 설계한 사람들이나 이 방 저 방 짐 들고 이사 다니는 사람들은 ‘이래도 되나’와 ‘이건 아닌데’ 사이에서 난감하다.

2010년 12월 예산안 및 '친수법(4대강 사업 당시 강 주변 2km에 주택·관광시설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법안)'처리를 두고 국회의장석 주위에서 처리를 강행하려는 여당 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 의원들이 뒤엉켜 있다. /조선일보DB


그나마 함께 살도록 해 지붕 밑에서 비라도 피할 수 있으면 행운이다. 그 세입자는 모두 함께 살라고 지어준 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선별해 집어넣고 나머지는 거리로 내몰 기세다. 그 세입자가 지금 벌이는 일을 보면 집을 비워줄 생각이 영영 없어 보인다.

반면 힘없는 야당은 가장 승산 없는 싸움에 올인한다. 싸움의 결기는 인정할지언정 그 과정과 결과는 바람직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선수는 자신의 체급과 강점과 약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모자라는 힘은 채우거나 밖에서 빌리고, 약점은 최대한 관리해야 한다. 야당은 지금의 사태를 가져온 계엄·탄핵조차 타개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때도 지금도 야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화하는 ‘메타인지’다.

“민심과 여론의 차이를 논하시오”는 내가 즐겨 내는 시험문제다. 정답은 “민심이란 절대 통치자의 독단과 권위를 거부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피지배자들의 개별적으로 흩어진, 막연하고 추상적인 신민(臣民)의 의견이다. 여론이란 계몽된 시민(市民)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공동 의지로서 독단과 불합리를 거부할 수 있는 동력이 있는 일반의지다”이다. 요약하면 민심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고, 여론은 그 힘이 있다. 이론대로라면 여론은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 힘이 선하게 작동하면 시민사회를 지탱하지만, 독을 품으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전파력과 나쁜 정치인들의 콘텐츠가 결합할 때, 또 정체불명의 개인 방송이 조작한 루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확대 증폭될 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전체주의로 돌변한다. 돌아다니는 민심을 청취하기는커녕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작해 퍼뜨리는 데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고 사회를 주무르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우리가 애초에 설계한 집이 그런 집이 아니었음을 상기시켜 줄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원래 방들의 크기 사이에는 균형이 있었으며, 그 거주자들은 자유로웠고, 거주에는 계약 기간이 있었다. 그러기에 사는 동안 집을 조심해서 다뤄야 하고, 다음 세입자에게 온전히 돌려줘야 한다. 기둥째 거덜내서는 안 된다. 요즘 미쳐 돌아가는 일부 정치인을 제외한 나머지 우리 사회의 하부구조가 모두 나서서 그 집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지금 세입자가 폭주를 자제하고 긴장하도록 야당이 정신 차리고 건실해졌으면 좋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02/UQFDBFE26VC7PHNS4W25AJOXV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