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5.10.02. 23:43
어려운 삶 함께 버텨온 아내를 함부로 내치지 말라는 말이 한때 퍽 유행했다. ‘먹물기’를 과시하는 듯 자주 읊조리던 경구,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다. 남성 위주의 옛 왕조 시대에 일찌감치 자리 잡은 구절이다.
‘조강’은 술 빚다 남은 찌꺼기 뭉치나 쌀겨 등을 일컫는다. 먹을 것이 부족해 술 찌꺼기나 쌀겨 등으로 배를 채우던 고난의 시절을 상징한다. 술 거르고 남은 찌꺼기는 달리 조박(糟粕)이나 주조(酒糟), 재강(滓糠) 등으로 적기도 했다.
구어체 표현으로는 술지게미·술찌끼·술재강·술비지 등이 있다. 대부분 술을 만들다 찌꺼기로 나온 부산물(副産物)을 가리킨다. 흔히 ‘보잘것없음’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중 ‘술비지’의 표현이 관심을 끈다.
‘비지’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콩을 갈아 만드는 두부의 부산물을 지칭한다. 그러나 두부 외 부산물에도 가끔 쓰이는 듯하다. 중국에서는 두부의 찌꺼기인 비지를 일컬을 때 두부사(豆腐渣)라고 적는데, 꽤 오래 유행하는 말이다.
음식으로 먹는 비지 외에 부실한 공사, 재료를 제대로 쓰지 않은 건물 등을 지칭한다. 새로 지었으나 손만 대도 부서지는 콘크리트 벽, 교량 난간의 속을 채우는 스티로폼, 바닥이 쉽게 꺼지는 새 도로 등이 다 그 대상이다.
중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두부(豆腐)의 본고장인 중국답게 비지처럼 푸석거리다 무너지는 건축이 항상 줄을 잇는다. 이제는 아예 사람을 비지에 빗대 사남(渣男), 사녀(渣女)로 부른다. 여러 함의가 있지만 대개는 ‘쓰레기 같은 남녀’다.
큰 것만 따지다 디테일은 무시하는 ‘대강대강(大綱大綱)’의 분위기로 늘 대형 부실을 부르는 게 중국 사회의 특성 중 하나다. 그럼에도 큰 줄기(大綱)는 놓지 않아 미국을 위협하는 첨단 산업 경쟁력을 착실히 갖춰 가고 있으니, 항상 잘 살펴야 할 중국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02/UIFBABPQ5FF6FMRHLAX5BULDV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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