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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이 땅의 청년들 앞에 길이 안 보인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5.11.06. 23:32 업데이트 2025.11.07. 03:15

'월 천 보장'에 캄보디아로 떠난 청년들
누군 한 줌 재로, 누군 피의자로 돌아와
한국은 실업, 비정규직, 주거 비용 등 척박

청년들 앞길 열어줄 의무와 책임 버리고
자식에게만 부동산·축의금 준 권력자들
세금 값 못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월 천 보장’이라는 꼬임에 끌려 캄보디아로 떠났다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 대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에게 이 땅은 도저히 그 정도 소출을 기대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음이 분명하다. 세상 모든 난민의 공통점은 가난이다. 가족도 국가도 그 누구도 열어주지 못한 길을 찾아 청년은 떠났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문제가 터지자 정부는 뒤늦게 전세기를 끌고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청년들을 데리러 간다길래 억울한 청년과 가족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는 공항 장면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역대 최대 범죄자 송환이라는 기록과 함께 입국한 이들은 기내에서 미란다 원칙을 듣고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수갑을 찬 채 호송차 23대에 나눠 타고 관할 구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외교부 추산 캄보디아 내 실종 신고 건수는 8월 말 현재 550건, 이 중 80여 명의 안전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가 단 한 명이라도 찾아내 구출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애초에 그들은 왜 캄보디아로 갔을까. 구조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한이 없다. 국내 정치 혼란과 공백에 따른 소극 행정, 국제화된 스캠 조직의 침투, 좁아진 청년 취업 시장, 쉬운 돈벌이 유혹, 희박해져 가는 범죄 의식, 지방 소멸, 청년 가난.... 불운하게 유명을 달리한 대학생 사건으로 당분간 캄보디아를 찾는 청년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정이 나아진 건 결코 아니다. 가난도, 미래의 막막함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의 기회도 모두 그대로다.

지금 사회 문턱에 선 젊은이들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고, 평생을 일할 직장도 구하기 어렵다고 각종 지표는 웅변한다. 올해 청년 실업률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4분기 연속 고용 악화에 따른 결과다. 20대를 채용하는 제조업 등 주력 업종의 채용 문이 축소되고, 정부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도 갈수록 줄고 있다. 단기 알바를 전전하는 젊은이들의 체감 실업률은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20대 취업자가 3년째 계속 감소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기만 한다. 청년 신용 불량자도 늘어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소득 이동 통계에 따르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답한 사람은 17.3%에 그쳤다.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청년들은 불행하다. 비정규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 되면 “돈을 모아서 집값이 내리면 그때 사라”고 했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켜 물러난 국토부 고위 관리의 말은 애초부터 망발(妄發)이다. 지금의 구조로는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진욱(오른쪽) 경찰청 과학수사운영계장이 캄보디아에서 납치·살해된 한국인 대학생 A씨의 유해를 안중만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장에게 인계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지출해야 한다. 그동안 주거 안정과 자산 증식 역할을 해온 전세의 씨를 말리자 월세 비율이 높아져 청년들 주거 비용만 턱없이 올라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갚을 능력이 있어도 아예 돈을 빌리기 어렵게 해놓았다. 청년은 물론, 중산층 주거 상승 사다리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서울의 현금 부자나 지방 부호의 자제가 아니면 주택을 거래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판이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를 웅변하는 지표는 따로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축적한 후, 그걸 자식들에게 떼어주다 하필 높은 자리에 가는 바람에 그게 드러난 사람들이다. 워낙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싫지만, 일단 생각나는 사람들은 있다.

우선 초등~중등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재개발 지역 상가를 각각 증여한 민주연구원장이 떠오른다. 또 강남에 주택 중 하나를 처분한다고 했다가 자식에게 증여한다고 했다가 다시 시세에 맞춰 높은 가격에 시장에 내놨다 비난이 일자 다시 가격을 낮춰 매매한 후, 아들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걸 대단한 희생처럼 떠벌린 금융감독원장도 있다. 딸의 결혼식을 국회에서 그것도 국정감사 기간에 치러 피감 기관들의 화환 세례를 받고 카드 결제로 축의금을 받아 파란을 일으킨 여당 국회의원은 독보적이다. 여기에 자신은 갭 투자로 이득을 보고서도 그걸 못하게 막는 정책을 줄줄이 내놓아 국민의 주거 사다리를 끊어 놓은 국토부 정책통들과, 그 사다리 위인 토지거래허가 지역에 집을 보유한 7할의 지금 정부 참모와 장차관급이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엔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자식들이 결코 성실히 일해서는 돈을 모으거나 집을 사는 것이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니 아비가 나서서 번 돈을 떼어 주거나, 어미가 힘이 있을 때 어떤 계기를 마련해 한몫 당겨 주지 않으면 결코 젊은이가 기반을 다질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지저분하지만 애틋하고, 불쾌하지만 인지상정인 부모의 도리를 다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고 그들이 가증스러운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이 땅의 고위층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살길과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피 같은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에게 부동산을 주기 전에 이 땅의 아들들이 부동산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을 다져주고, 딸 축의금 봉투를 세기 이전에 이 땅의 딸들이 행복한 결혼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도록 길을 닦아 달라는 것이 국민의 주문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 값도 못하는 천한 권력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1/06/NJB7LPXYW5H4VPAWBKXIDSJBB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