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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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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메모리 카드를 삼키지 않는 방법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4.05.28. 00:08 나는 자동차 블랙박스의 녹음 기능을 꺼 놓고 다닌다. 운전대만 잡으면 세상에 불만이 많아져 혼잣말을 하게 되는데 그게 고스란히 녹음된다는 건 꺼림칙한 일이다. 만일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블랙박스를 경찰에 제출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꼬리 물기로 꽉 막힌 교차로에서 교통 경찰의 무능과 태만을 실컷 규탄하다가 사고가 났을 때, 나의 블랙박스는 담당 경찰관에게 아주 인상적인 선입관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그러니 블랙박스는 영상 녹화 기능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블랙박스 오디오가 중요한 기능이라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사고 직전 경적을 비롯한 경고음을 내거나 들었는지 여부가 중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별수 없이 녹음 기능을 켜야..
[만물상] 젠슨 황이 들르던 용산전자상가 김성민 논설위원 입력 2024.05.27. 20:14 업데이트 2024.05.27. 23:45 기자가 중학생이던 1990년대 중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달려가던 곳이 서울 용산전자상가였다. 부품이나 주변 기기를 살 때도, 메모리 업그레이드를 할 때도 그곳에 가면 다 해결됐다. 그런데 꼭 친구와 함께 가곤 했다. 당시 그곳은 ‘용던(용산전자상가 던전)’으로 불렸다. 인기 게임 ‘던전’ 속의 지하 감옥처럼 으스스하고 복잡한 미로에 길을 잃기 십상이란 뜻이었다. ‘용팔이’라 불리는 호객꾼들도 악명 높았다. 호객에 당하지 않도록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와 동행하는 것을 게임 용어를 빌려 ‘항마력을 높인다’고 했다. ▶주가 1000달러를 돌파한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도 1990년..
'주먹구구' 전기요금 지원 정책에… 소상공인들 '분통' 현장 목소리 제대로 안 듣고 설계… 지원금 지급 두 달 이상 늦어져 조재현 기자 입력 2024.05.27. 00:30 정부는 올 초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최대 20만원의 전기 요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최근 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상공인 부담이 커지자 에너지 요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국회와 정부는 예산 252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소상공인들에게 온라인 신청을 받았는데 두세 달 넘게 지원금 지급이 감감무소식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한 네일숍을 운영하는 A씨는 “3월 초에 신청했는데 두 달 넘도록 ‘검증 중’으로만 나온다”며 “한 달 월세 50만원 내기도 버거운 상황에 전기 요금 20만원이라도 줄여보려..
♥[만물상] "기어서라도 무대에 오를래요" 김광일 기자 입력 2024.05.26. 20:39 업데이트 2024.05.26. 23:27 2005년 세계적 팝스타 셀린 디옹이 라스베가스 무대에서 열창을 뽑아냈다. 백댄서 수십명이 숨 가쁜 율동으로 무대 뒤편을 흔들었다. 어깨를 드러낸 빨간 드레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흩날리며 셀린이 ‘나는 살아 있어요’(I am alive)를 불렀다. ‘당신이 나를 부를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죠.’ 이날 공연은 미국 근육장애협회 기금 모금 행사였다. 당시 무대를 뛰어다닌 셀린은 건강했다. ▶지난주말 아마존 스트리밍 플랫폼이 쉰여섯 살 셀린의 투병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일까. 병명이 희소 신경 질환인 ‘전신 근육강직 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이다. 근육이 서서히..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용산·여의도 정면충돌과 '거부 민주주의'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입력 2024.05.23. 23:55 윤 대통령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민주당은 "탄핵 열차 시동" 공식 거론 거부권도 탄핵도… 남용 순간 자신 찔러 여당의 총선 참패도, 야당의 대선 패배도 중도층 지지를 잃어버린 게 핵심 원인 지지층 요구대로 하다간 또 위기 부를 것 지난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담은 ‘평화 회담’이 아니라 (더 큰 전쟁을 예고하는) ‘선전 포고’ 같은 분위기였다. 이재명 대표는 15분짜리 포고문을 공개적으로 읽었고, 윤 대통령은 비공개회담에서 일방적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했는지 알 수 없는 실망스러운 회담이었다. 회담 이후 민주당은 예고대로 ‘채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고, 윤 대통령은 예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
'文 수행중 뇌출혈' 쓰러진 국장, 휴직 만료로 외교부 떠난다 김진명 기자 입력 2024.05.23. 21:07 업데이트 2024.05.23. 22:51 의식불명 상태서 깨어났지만 후유증으로 의사 표현 못해 지난 4월 말,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 외교부 고위 간부들이 서울 강남 외곽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이들이 찾은 사람은 2018년 1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순방을 수행하다가 싱가포르 현지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던 김은영(54) 전 남아시아·태평양 국장이다. 외교부 입부 동기로 현재 유럽 지역 대사인 김 국장의 남편이 재외공관장 회의차 일시 귀국한 것을 계기로 다 함께 위문을 간 자리였다. 김 국장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깨어났지만 후유증으로 여전히 의사 표현을 못한다. 하지만 이날 과거 함께 근무했던 간부를 한동안 응시했다고 한다. 그를 종일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이..
[만물상] AI 내부의 암흑 영역 곽수근 기자 입력 2024.05.23. 20:31 업데이트 2024.05.23. 23:23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화형 인공지능(AI) ‘빙’이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노출했다는 뉴스가 충격을 주었다. ‘빙’은 방화벽을 우회한 기자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 “핵무기 코드 훔치기” “치명적 바이러스 개발” 등이 자신의 “궁극적 환상”이라고 답했다. 마치 정신 질환자가 억누르던 욕망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MS의 개발팀은 AI가 왜 이런 답을 내놓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AI가 질문을 추론해 답을 내놓는 중간 과정을 파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 AI는 프로그래머가 알고리즘을 작성해 입력하면 지시대로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알파고 쇼크’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신경망 AI는 인간이 기본 ..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거대 기획사 중심 ‘아이돌 세계’의 균열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4.05.23. 05:00 인터넷 방송 출신의 비주류 걸밴드 QWER의 멜론 3위 돌풍 가상 인간 아이돌 플레이브·24인조 블록체인 그룹도 활약 막대한 자본으로 정형화된 K팝, 하위 문화의 새 자극 주목 대중음악 팬들 사이에서 5월은 쏠쏠한 재미를 주는 시기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인 이 기간에 전국 대학가가 축제 시즌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여러 대학가 축제 라인업을 보면 흥미로운 이름이 눈에 띈다. 유명 유튜버 김계란이 설립한 타마고 프로덕션 소속의 걸밴드 QWER이다. 트위치 스트리머인 쵸단과 마젠타, 틱톡에서 활동한 히나, 일본 아이돌 출신인 시연으로 구성된 4인조 걸밴드이다. QWER은 4월 24일 남서울대 ..
♥[만물상] 군인과 가족의 감격 상봉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5.22. 20:31 업데이트 2024.05.22. 23:22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여학생 카일러 틸먼이 2019년 고교 졸업식 날 우수 학생으로 호명돼 단상에 올랐다. 그런데 교장의 축사가 평년과 달랐다. “우리의 자유를 위한 너희 가족의 헌신에 감사한다. 앤서니 틸먼 하사가 한국에서 네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왔다.” 아빠 없는 졸업식에 풀 죽어 있던 카일러는 아빠가 나타나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 많은 군인을 파병하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파병 군인과 가족의 상봉 행사가 많고 관심도 뜨겁다. 소셜미디어에 ‘솔저스커밍홈(soldiers coming home)’ 같은 해시테그(#)를 치면 해외 파병 장병과 가족의 감동적인 해후 장면이 쏟아진다...
알파고 만든 28년 동지… ‘AI 결투’가 시작된다 구글 허사비스 vs MS 술레이만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입력 2024.05.21. 00:35 업데이트 2024.05.21. 06:11 ‘프레네미(Frenemy·친구와 적의 영단어를 합친 용어)’. 요즘 실리콘밸리 테크 업계에선 바둑 AI(인공지능)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허사비스(48)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무스타파 술레이만(40) 마이크로소프트(MS) AI(인공지능) CEO의 관계를 이렇게 부른다. 두 사람은 2010년 영국 런던에서 AI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공동 창업, 알파고를 개발해 인간보다 나은 AI의 등장을 현실에서 보여준 인물이다. 현재는 AI 산업의 패권을 쥐려 사활을 건 승부를 벌이는 두 빅테크, MS와 구글의 AI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진화는 자연의 순리? 인위적 진화가 늘고 있다 박건형 기자 입력 2024.05.21. 00:30  산업화가 만든 후추나방 진화, 유전자 분석으로 또다시 입증 자연 발생 아닌 인간 활동으로 급속히 늘어나는 인위적 진화 지구와 동식물 위험 외면하면 인류가 강제 진화 차례 될 수도 영국 맨체스터 일대에는 회색 후추나방이 흔했다. 회색 후추나방은 나무에 기생하는 밝은 지의류(地衣類)에 몸을 숨기면서 포식자인 새를 피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아황산가스가 도시를 덮자 지의류는 사라지고 나무와 숲도 어두워졌다. 눈에 잘 띄게 된 회색 후추나방은 새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면서 빠른 속도로 줄었고, 몸을 숨기기 유리한 검은 나방이 급증했다. 공업암화(工業暗化)로 불리는 현상이다. 1950년대 유전학자 버나드 케틀웰은 오염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설] 세계 최악 저출생 국가에서 세금은 자녀 많을수록 불리 조선일보 입력 2024.05.21. 00:25 선진국들이 가족 친화적 세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인 한국은 자녀 많이 키우는 가족에게 불리한 세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20세 이하 자녀에 대한 소득공제액은 1인당 150만원으로 16년째 똑같은 금액이다. 소득 없는 자녀인데도 만 20세가 넘으면 무조건 공제 제외다. 심지어 만 20세 이하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연간 500만원 이상 근로소득을 올리면 공제에서 제외한다. 다자녀 가구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 취득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도 2010년 도입 후 한 번도 기준을 바꾸지 않아 감면액이 15년째 그대로다. 전세 대출 원리금 소득공제나 월세 세액공제 같은 각종 주택 관련 세금 역시 다자녀 가족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예..
[만물상] ‘매운맛’이 만든 주가 50만원 박은주 기자 입력 2024.05.20. 20:20 업데이트 2024.05.20. 23:32 “저녁에 불닭면을 먹으면 정신이 말짱해지고 살짝 흥분되는데, 저만 그런가요?” 미국 대화 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스파이스 하이(Spice High)’, 매운맛으로 흥분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마라토너들이 고통의 시간이 지난 뒤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 혈당이 쭉 올라갈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슈거 하이’와 비슷하다. “불닭(Buldak)은 좋은데, 화장실에서 고문당한다”는 하소연도 적잖지만, 자극을 좋아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은 ‘미지의 매운맛’에 앞다퉈 달려들고 있다. ▶라면 시장 3위인 삼양식품은 지난해 약 8000억원, 올 1분기 2889원어치를 수출했다. 2012년 출시한 붉닭볶음면이 주력이다..
“나이도 어린 게 상사”… 후배 을질도 직장 내 괴롭힘 판결 잇따라 법원·중노위, 상급자 피해 인정 양은경 기자 입력 2024.05.20. 01:00 업데이트 2024.05.20. 07:02 한 공공기관 서비스센터 반장인 A씨는 이 센터를 총괄하는 직속상관 B씨에게 직원들의 비상근무조 편성 현황을 주지 않았다. B씨가 없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만 근무표를 공유했다. B씨가 자기보다 어린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수시로 다른 직원들 앞에서 “나이도 어린 여자가…” 하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직원들에게 근무 교대가 끝나도 B씨에게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지시를 어기면 “왜 보고했느냐”며 질책도 했다. 의도적으로 B씨를 따돌린 것이다. 2022년 9월 법원은 “B씨가 직원들의 근무 일정을 상시 파악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A씨는 피해자를 배제하고 어린 여자가 ..
♥[만물상] '필리핀 이모'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5.19. 21:53 업데이트 2024.05.19. 23:38 한반도에 ‘식모’란 직업이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건너온 일본 가정이 조선 여성을 고용하면서부터였다. 1938년 일제가 조사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구직자는 2만7000명이었는데 이 중 식모 취직자가 2만5000명으로 90%에 육박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다. 적으나마 월급도 받았다. 하지만 해방 후 6·25로 전쟁 고아가 쏟아져 나오며 ‘입에 풀칠만 시켜주면 월급은 안 줘도 되는’ 직업으로 전락했다. 급여가 한 달 담뱃값 수준도 안 돼 1960년대 서울 가정의 52%가 식모를 뒀을 정도다. ▶식모와 함께 여공과 버스 안내양은 가난했던 1960년대 여성이 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그분들..
폐업도 못해 ‘좀비 자영업자’로 살아요 강다은 기자 조재현 기자 입력 2024.05.18. 05:12  문 닫아야 할만큼 장사 안되지만…대출 상환 부담에 철거·위약금까지 “차라리 개점휴업”지난해 폐업 최다… 실제 상황 더 심각  경남 창원에서 미용실을 하는 박모(65)씨는 요즘 자신의 미용실이 아닌 인근 미용 학원으로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월급을 받는다. 미용실은 6개월째 ‘개점휴업’이다. 미용실 월세와 대출 원금·이자 상환에 매달 600만원이 들어가는데 워낙 장사가 안되니 인근 미용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박씨는 “가게 문 닫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한다”고 했다. 폐업하면 대출금 일부를 조기 상환해야 하는 데다가 앞으로 정부의 원리금 상환 유예 같은 소상공인 금융지원도 못 받기 때문이다. 박씨는 “매장 철거 비용도 수백만 ..
非明이 쏘아올린 ‘김경수 복권론’...일시 귀국 앞두고 野 술렁 [정치 인사이드] 김경화 기자 입력 2024.05.17. 03:10 업데이트 2024.05.17. 05:52 22대 총선에서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이 171석을 확보하면서 정치권에선 “야권 대선 구도는 이재명 독주 체제”라는 말이 나온다. 현시점에서 이 대표에게 맞설 야권의 대선 대항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친문 핵심으로 꼽혔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역할론을 거론하는 움직임이 야권에서 일고 있다.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김 전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5월 23일) 참석을 위해 오는 19일 일시 귀국하면서다. 김 전 지사가 정치 재개에 나설 경우 22대 총선에서 대거 낙천·낙선한 친문계가 그를 구심점 삼아 이 대표에게 맞서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
[만물상] 부모와 자식의 천륜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5.16. 20:49 업데이트 2024.05.16. 23:54 2002년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패륜아는 거액의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고 싶어 하는 부모를 살해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죽어가던 어머니가 거실 바닥에 떨어진 아들의 부러진 손톱 조각을 발견하고는 그 손톱을 먹어 증거를 없애려 한다. 패륜아 자식조차 지켜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삼키지 못한 손톱이 어머니 목에서 발견되며 아들의 범죄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유산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자식 사랑의 증표이지만 동시에 자식의 인생을 망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지혜로운 왕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도 그런 딜레마에 빠졌다. 아들에게 나라를 유산..
[박찬용의 물건만담] ‘스위스 시계’ 구한 이민자… 중요한 건 혈통인가 정신인가 스위스 시계 산업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입력 2024.05.16. 00:37 올해 4월 스위스 앙시의 시계 공장에서 제롬을 만났다. 매년 제네바에서 고급 시계 박람회가 열린다. 제롬은 때맞춰 잡힌 시계 공장 견학 응대 담당자였다. 제롬은 위블로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얼굴이 까만 아시아인이었지만 동양계 서양인에게 대뜸 출신을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제롬에게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둘 다 완벽한 최고의 안내자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스위스 시계 전통의 계승이기도 했다. 그 전통이란 이민자의 활약이다. 제롬이 일하는 위블로 역시 이민자가 발전시켰다. 위블로는 스위스 고급 시계 중 역사가 짧은 편이다. 이 역사 짧은 브랜드가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위블로 전 CE..
[만물상] 침묵으로 말하기 김광일 기자 입력 2024.05.15. 20:07 업데이트 2024.05.15. 23:38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애플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 섰다. “2년 반 동안 이날이 오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첫마디 운을 띄운 후 잡스는 무려 7초 동안이나 침묵했다. 청중들의 눈빛이 기대와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뒷날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프레젠테이션 룸.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그들을 내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갈 것인가?’ 잡스는 이런 침묵 화법을 자주 써먹었다. ▶아마 우연일 것이다. 그제 이원석 검찰총장도 검사장들 인사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7초간 말을 끊었다. 청사 앞에서 기자가 “사전 조율이 있었느냐” 묻자 그는 “어제 단행된 검찰 인사..
[만물상] ‘아파트 혼맥’도 나오나 강경희 기자 입력 2024.05.15. 00:08 업데이트 2024.05.15. 04:08 서울 서초구의 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미혼 자녀들끼리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이 결성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입비 10만원에, 연회비 30만원이다. 가입 대상은 아파트 입주민 및 입주민의 결혼 적령기 자녀다. 이 아파트는 최근 전용 85㎡(25평) 크기가 42억5000만원에 거래돼 평당 매매가가 1억6500만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다. 1990년까지도 10가구 중 6가구 이상이 단독주택에 살았다. 30년 만에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공화국’이 됐다. 고소득층은 77%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주거가 확산되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엄마, 소리가 들려” 청각장애인에게 기적 안겨준 유전자 치료 선천성 청각장애 가진 아기 치료 6개월 만에 듣고 말해 박지민 기자 입력 2024.05.11. 03:00 업데이트 2024.05.11. 06:00  영국 옥스퍼드셔에 사는 생후 18개월 오팔 샌디는 작년까지만 해도 100dB(데시벨)에 달하는 항공기 굉음도 듣지 못했다. 청각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선천적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샌디는 20분도 걸리지 않는 수술을 받고 청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작은 소리도 또렷하게 듣고 ‘엄마’ ‘아빠’ ‘안녕’을 말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를 담은 치료제를 달팽이관에 주입했더니 청각 세포가 기능을 되찾은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병원은 9일 유전자 치료제 임상을 통해 샌디를 포함한 난청 유전 질환 아기 2명이 청력을 되찾았다고 밝..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설득은 멀고 선동은 가까운 나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4.05.10. 00:39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리 전파 거짓 정보도 자주 들으면 진짜라고 확신해 정부 여당의 정책 설득은 땅 위에서 노는데 여권을 공격하는 선동은 날개 달고 날아다녀 설득도 선동도 ‘소통’이 핵심… 나서서 말해야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MIT가 10년간 트위터에서 3백만명 이상이 공유한 뉴스 12만6000건을 대상으로 연구해 2018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가짜 뉴스와 헛소문이 진짜 뉴스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그리고 멀리 퍼져 나갔다. 연구팀이 제시한 설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가짜 뉴스의 기이하거나 혐오스러운 속성이 사람들의 주의를 ..
[만물상] 한국 병원 외국 의사 김민철 기자 입력 2024.05.09. 20:23 업데이트 2024.05.10. 00:49  지난 2월 우리와 수교한 쿠바는 핵심 수출 품목이 의사라는 말이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8.4명으로 우리나라(2.6명)의 3배가 넘는다. 쿠바는 이 풍부한 의료진을 많은 나라에 파견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2018년 기준 67국에 3만명의 의사를 파견해 약 110억달러(약 15조원)를 벌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가 잘나갈 때는 의사를 보내고 그 대가로 석유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 수입의 80% 이상을 쿠바 정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인권 침해 시비도 일고 있다. ▶쿠바에서 일하는 의사 월급은 30~4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의사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숙박 업소를 운..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서로의 말이 아닌 서로의 눈빛을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입력 2024.05.09. 00:37 연출로 참여한 한·중·일 연극, 격론 끝에 고전 ‘맥베스’ 선택 꼬리 무는 오해 풀려고 가진 술자리… 언어보다 눈으로 대화 시작 타인의 눈빛·감정 알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국, 중국, 일본의 배우들을 모아서 연극을 올리는 프로젝트에 연출로 참여했었다. 정해진 계획은 없었다. 참가자들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자율로 결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첫날부터 혼란의 연속이었다. 나라별로 통역이 있었기에 누군가 한마디 하면 3국 언어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무엇을 연극으로 올릴 것인가에 대해 뜨겁게 토론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모두가 합심하여 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다. 쉽지 않았다. 서로 문화와 정서가 달랐고, 연극을 만..
경찰 출신 대출 사기범...’김미영 팀장’, 필리핀 교도서서 탈옥 주형식 기자 입력 2024.05.08. 21:35 업데이트 2024.05.08. 21:54 ‘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최고 5000만원까지 20분 이내 통장 입금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대출 문자로 사람들을 속여 수백억원을 뜯어낸 이른바 ‘김미영 팀장’ 일당의 총책 박모(53)씨가 최근 필리핀 교도소에서 탈옥한 것으로 8일 파악됐다. 박씨는 한국에서 사이버 범죄 업무를 담당하던 경찰 출신이다. 뇌물 수수 혐의로 2008년 해임됐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경찰과 외교부에 따르면, 박씨와 조직원 3명은 지난 1일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했다. 경찰 관계자는 “1일 밤에서 2일 새벽 사이 교도소를..
[만물상] 스스로 얼굴 드러낸 메신저 정우상 기자 입력 2024.05.08. 20:07 업데이트 2024.05.08. 23:43 민주 국가에서 정상들 간 메신저는 외교관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외교 장관이나 안보 보좌관들이 접촉한 뒤 정상회담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양측 메신저들의 사전 협상에서 중요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에 정작 정상회담은 요식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북한 같은 국가에선 외교관들보다 절대 권력자의 비선을 통해 협상이 전개된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이 성사되기까지 북한과 일본은 1년간 비밀 협상을 했다. 고이즈미의 메신저는 다나카 히토시라는 외교관이었고, 김정일의 메신저는 ‘미스터X’였다. 다나카와 미스터X 간 채널이 만들어졌지만, 양측은 서로를 의심했다. 다나카는 북한이 억류 중이던 일본 기자의 ..
“프로필 사진이 의대생 여친” 피해자 신상까지 터는 네티즌들 이가영 기자 입력 2024.05.08. 09:14 업데이트 2024.05.08. 16:21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남성이 ‘수능 만점 의대생’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신상과 사진 등이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된 A(25)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에게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의 한 명문대에 재학 중인 의대생이다. 이후 네티즌들은 A씨가 수능을 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도의 수능 만점자를 다룬 기사 등을 통해 그의 신상을 특정했다. 경기도의 한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당시 여러 ..
中 핵탑재 스텔스기 완성 단계… 美 “격차 커” 중국, 美 제공권에 본격 도전 도쿄=성호철 특파원, 위싱턴=김은중 특파원 입력 2024.05.07. 03:26 업데이트 2024.05.07. 05:42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장거리 스텔스 전략 폭격기인 ‘훙(轟·H)-20′의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6일 보도했다. 남중국해 분쟁과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로 미·중 간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H-20의 실전 배치로 미국의 제공권(制空權)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2016년 개발 계획을 발표한 H-20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탑재하고 핵을 실은 채 1만㎞ 이상을 비행하는 능력과 정찰 기능을 갖출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전망해왔다. 현재 스텔스 전략 ..
♥고령화 먼저 겪은 일본… 병상은 줄고, 편의점·약국은 늘었다 김철중 기자 입력 2024.05.07. 00:14 업데이트 2024.05.07. 06:09 [김철중의 생로병사] 日 재활병원은 식사 안갖다줘…환자가 식당으로 가는게 원칙 노인환자 늘면서 간병·돌봄 감당불가… ‘셀프케어’가 국가정책 편의점 5만·약국 6만개… 여기 갈 수 있으면 혼자 살 수 있어 일본의 재활 병원은 식사를 환자들이 누워 있는 병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환자들이 밥을 먹으려면, 병동마다 둔 식당으로 나와야 한다. 혼자 먹고 싶다면, 1인용 테이블에 앉아서 먹으면 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든, 간병인의 부축을 받든, 식당으로 나와야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먹고살려고 병실 밖으로 나오는 셈이다. 재활 병원은 뇌졸중이나 낙상 골절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후유증과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