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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잠에서 깬 ‘하이엔드 중국’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4.03.26. 21:01 업데이트 2024.03.27. 00:54

일러스트=이철원


중국은 수천 년간 외국에서 공물을 받고 하사품을 주는 조공(朝貢) 무역을 했다. 조공 체제를 유지한 힘 중 하나는 중국산 하이엔드(high end·최고 품질) 물건이었다. 주변국들은 조공을 통해서만 도자기, 종이, 비단, 의약품, 과학기구 등 당대 최고 물품을 접할 수 있었다. 조선 왕조가 3년에 한 번만 조공하라는 명나라 요구를 무시하고 매년 여러 차례 조공 사신단을 보낸 것도 고품질 물품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17세기 유럽 왕실, 귀족 저택엔 ‘차이나 룸’이란 별실이 있었다. 중국 도자기, 옻칠 가구, 비단 같은 중국산 공예품을 따로 모아둔 장소였다. 차이나 룸의 규모가 부의 척도로 여겨질 정도였다. 인쇄술·화약·나침반을 발명한 기술 선진국 중국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 뒤처졌다. 중국 도자기는 영국 본차이나에, 비단은 인도 면화에 밀려났다.

▶공산혁명 이후 개혁개방을 표방하고 중국도 산업화에 나섰지만, 중국 공산품은 수십 년간 싸구려, 짝퉁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MP3, 이어폰, 휴대폰 배터리 등 소형 가전을 중심으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의 제품을 선보이며 ‘대륙의 실수’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후 인공지능(AI), 우주항공, 양자컴퓨터 등 최첨단 분야의 기술 굴기와 더불어 ‘대륙의 실수’ 영역이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요즘 서울 강남 주부들 사이에 중국산 하이테크 로봇청소기가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먼지 흡입은 물론 물걸레 청소까지 하고 청소가 끝나면 걸레 세척, 건조까지 알아서 다 한다. 가격이 150만원을 웃도는데도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다. 싸구려 가전의 대명사였던 중국 하이얼은 2016년 GE 가전사업을 인수한 후 명품 기업으로 변신했다. 하이얼의 와인 냉장고는 고품질, 최고 가성비로 미국 시장의 60%를 장악했다. 요즘 중국 휴대폰 기업들은 독일 라이카 카메라와 AI 기능을 장착한 첨단 제품으로 애플을 밀어내고 있다.

▶'대륙의 실수’ 원조 샤오미가 전기차 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놀라운 스펙의 전기차를 내놨다. 포르셰 타이칸을 닮은 샤오미 SU7은 664마력으로 2.78초 만에 시속 100㎞에 도달한다. 최고 속력 265㎞를 자랑하며 1회 충전으로 800㎞를 달린다. 10년 전 “중국 전기차는 후지다”고 조롱했던 일론 머스크가 최근엔 “중국 전기차가 수입되면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거의 다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잠에서 깬 ‘하이엔드 중국’의 기세가 두려울 정도다.

포르셰 타이칸
샤오미 SU7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3/26/CJ62T53RIJBTRCDSNY2JO5KRG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