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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러시아와 이슬람의 ‘불구대천’

안용현 기자
입력 2024.03.25. 20:25 업데이트 2024.03.26. 00:05

일러스트=이철원


19세기 남진하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이 10여 차례 전면전을 벌였다. 러시아가 이겼다. 흑해부터 중앙아시아에 걸친 이슬람 영역을 차지했다. 지금도 러시아 인구 1억4300만여 명 중 2000만명 이상이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다. 차르가 이슬람교 대신 기독교 일파인 러시아 정교를 강요하자 무슬림들이 집단 반발했다. 러시아 혁명이 터지자 차르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던 무슬림 중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나왔다.

러시아 무슬림들은 레닌과 스탈린을 지지했다. 종교·민족 문제에서 관대하다고 봤다. 커다란 오판이었다. 스탈린은 1920~1930년대 정적과 무슬림 공산주의자들을 대거 숙청했다. 종교·이념·민족이 결합하면 1인 독재를 위협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슬람 사원부터 없앴다. 무슬림 국가 출현을 막으려고 ‘분할’ 정책도 썼다. 중앙아시아를 ‘스탄’ 국가 5곳으로 나눴다. 무슬림이 많은 소련 내 체첸과 인근 주민 40만명을 1944년 카스피해 서쪽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10만명 이상이 객사했다. 소련 무슬림들은 ‘철의 장막’에 막혀 주변 무슬림과도 격리됐다.

▶무슬림들도 그냥 있지 않았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다가 무슬림에 거센 반격을 당했다. 이 일은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이 틈을 타고 무슬림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푸틴이 등장해 짓밟았다. 그는 체첸 탄압을 ‘강한 러시아’ 선전으로 이용했다. 푸틴은 체첸 수도를 지도에서 지우는 공격으로 40만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다. 체첸 무슬림 테러가 이어졌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으로 170여 명, 2004년엔 북(北)오세티야 초등학교 인질 사건으로 33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0년대 들어 중앙아시아 ‘스탄’ 지역 무슬림들이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독재와 경제 악화가 겹치면서 젊은층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들었다. 차르 시대부터 소련을 거쳐 이어진 러시아의 이슬람 탄압 역사를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러시아가 24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테러 피의자 4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타지키스탄 국적이라고 한다. 이번 테러의 배후라는 ‘ISIS-K(호라산)’의 호라산 지역도 ‘스탄’ 일대다. 기독교 유대교와 이슬람의 충돌은 종교전쟁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와 이슬람의 충돌은 알라 부정론(무신론) 대 알라의 전쟁이다. 러시아는 테러 피의자들을 고문하는 장면을 일부러 공개했다. 한 명은 귀가 잘리고 한 명은 성기에 전기 고문을 당했다. 이슬람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불구대천(不俱戴天)’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3/25/RN7FCEY3NFG5RNIRRK55JQQMD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