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입력 2025.01.20. 00:20
먹기러기
달에 눈썹을 달아서
속눈썹을 달아서
가는 기러기떼
먹기러기떼
수묵으로 천리를
깜박인다
오르락내리락
찬 달빛
흘려보내고
흘려보내도
차는 달빛
수묵으로
속눈썹이 젖어서
-손택수(1970-)
손택수 시인의 시에는 잔잔한 감응이 있다. ‘연못을 웃긴 일’이라는 제목의 시에는 “못물에 꽃을 뿌려/ 보조개를 파다// 연못이 웃고/ 내가 웃다// 연못가 바위들도 실실/ 물주름에 웃다”라고 쓴 시구가 있는데, 이런 대목을 읽노라면 마음이 가만가만히 따라 움직이게 된다. 잔물결이 일어서 퍼져가듯이.
눈썹 모양의 달이 뜬 밤에 시인은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눈썹달은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뜻하니 그런 날의 밤하늘은 어둑어둑하고, 그래서 연신 날개를 치며 날아가는 기러기 가족의 모습은 마치 빛이 엷은 먹물로 그려 놓은 것만 같았을 것이다. 납작한 접시에 차가운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가 넘쳐 흐르고 다시 채워지듯이, 눈썹달에도 연한 빛이 괴었다가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시인은 보았을 테다. 상상을 보탠 것이겠지만 장엄하고 가슴 뭉클한 풍경이라고 하겠다. 이 시를 읽고 난 후에도 어떤 여파(餘波)가 밀려왔고, 흑백사진 속 가난한 일가(一家)의 모습이 얼핏 스쳐갔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1/20/ZUU66F6P2BCRVOY6G4DWBWPDF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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