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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평화의 사도' 메달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25.05.21. 21:01 업데이트 2025.05.21. 23:51

일러스트=이철원


1950년 12월 미 7사단 31연대 소속 스톰스 소령이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쫓아오는 중공군을 향해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북진할 때만 해도 전쟁이 금방 끝나 아내와 세 아들, 뱃속의 아기를 다시 만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매복한 중공군과 영하 40도 추위가 덮쳤다. 소령은 마지막까지 응사하다 눈 속에 쓰러졌다고 부대원들은 기억한다. 어제 제1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스톰스 소령의 3남(77)이 아버지를 대신해 국가보훈부가 주는 ‘평화의 사도(Ambassador for Peace)’ 메달을 받았다.

▶이 메달은 6·25에 참전한 22국 유엔군 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것이다. 2010년 6·25 60주년을 계기로 본격 수여됐다. 2013년 정전 60주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6·25를 “승리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잊힌 전쟁’으로 불리던 미국 내 평가를 교정한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해부터 메달 제작에 별도 예산을 투입했다. 메달엔 태극 문양과 비둘기, 태극기와 유엔기(하늘색) 색깔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5만여 명의 유엔군 참전 용사와 유가족이 받았다.

미 해군 예비역 대령 윌리엄스는 1952년 함경북도 회령 상공에서 소련 미그기 7대와 공중전을 벌여 4대를 격추했다. 그의 전투기엔 총탄 자국 263개가 남아 있었다. 진짜 탑건이었다. 그런데 대령은 2023년에야 이 메달을 받았다. 6·25 공식 참전을 부인하던 소련과의 교전 자체가 극비였기 때문에 기밀 해제 전까지 무공훈장은 물론 메달도 달지 못했다. 그는 “그때 (남북을) 통일시키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쉽다”고 했다.

미 해병대 예비역 병장은 LA 총영사관에서 이 메달을 걸고 우리말로 ‘아리랑’을 불렀다. “한미 우정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현지 메달 수여식에는 지역 정치인들도 참가해 한미 동맹을 강조한다. 지난달 메달을 받은 미 예비역 해병은 6·25 때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다닌다. 그는 “제가 젊음을 바쳐 지킨 한국이 그동안 많은 업적을 이뤘다”며 감격해 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스톰스 소령 막내아들은 한 인터뷰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자유를 위해 싸운 아버지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참전 유엔군이 연인원 200만명이다. 전사 4만여 명, 실종 4000여 명이다. 현재 39만여 명이 생존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들이 없었으면 우리도 김씨 왕조의 노예가 됐다. 진정한 ‘평화의 사도들’이다.

평화의 사도 메달
스톰스 소령
스톰스 소령의 3남
대령 윌리엄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5/21/UGMIRWOCCVBIREL5RCIMQ7MABE/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