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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한현우의 팝 컬처] 음악을 듣고 얼어붙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입력 2016.10.13 03:06


어렸을 적 아버지가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틀어주신 위풍당당한 라데츠키 행진곡
한여름에 들어도 추웠는데 우연히 들은 '자클린의 눈물' 장한나의 연주에 빨려 들어가

월요일 아침엔 헤비메탈을 들으며 출근한다. 일주일의 전투를 다짐하는 데 그만한 음악이 없다고 하면 다들 웃는다.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은 이 말에 심지어 감동받는다. 전투 운운은 농담이지만 한 주를 시작하는 음악으로 헤비메탈을 고르는 것은 사실이다. 일주일 중 월요일 아침의 몸과 정신이 헤비메탈을 듣기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거나 가사가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은 빼고 블랙 사바스AC/DC 같은 헤비메탈의 고전을 듣는다. 몸에서 한 주간 필요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소리가 들린다.

블랙 사바스, AC/DC


화요일부터는 헤비메탈을 듣기 싫어진다. 시끄럽고 따갑다. 그럴 때는 관악기 위주의 재즈를 듣는다. 현을 퉁기거나 건반을 두들기지 않아 자극이 덜하다. 아침에 듣는 재즈는 가급적 기교나 실험성이 적은 것을 고른다. 어떤 날이든 저녁에 듣는 음악은 블루스가 최고다. 블루스 음계에는 기분 좋은 저녁의 흥을 돋우는가 하면 피곤하거나 우울한 밤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흑인들이 목화밭에서 노예로 일하며 만들어 낸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에 가지 않는 한 클래식을 듣지 않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친구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왕성하게 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편안한 팝)으로 분류되는 음악을 듣기 시작해 으로, 록에서 헤비메탈을 거쳐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까지 듣게 되는데 결국 종착역은 클래식이라고 말이다. 그때 친구들 말처럼 그 경로를 비슷하게 거쳐 재즈까지 듣게 됐지만 아직도 음반을 고를 때 클래식을 꺼내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면 '라데츠키의 저주'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크게 틀어 우리 삼형제를 깨우셨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있는 힘껏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며 시작하는 이 음악을 듣고도 깨어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깨어나지 않을 사람뿐일 것이다. 그 음악을 들은 아침 가운데 추운 겨울 아침이 더 또렷이 기억나서, 지금도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으면 한여름에도 춥다. 요한 슈트라우스 1가 작곡한 이 음악은 오스트리아의 라데츠키 장군을 칭송하는 곡이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것은 아침잠을 깨웠던 라데츠키 장군 때문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라데츠키 행진곡, 라데츠키 장군



지난 주말 늦은 아침을 먹다가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장한나의 '자클린의 눈물'을 들었다. 이미 여러 번 들었고 익숙한 멜로디였으나 말 그대로 갑자기 그 곡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음악이 연주되는 6분여 동안 숟가락질은 물론 어떤 행동이나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장한나는 붓으로 난(蘭) 치듯 연주했다. 끊어질 것처럼 가늘고 섬세하게 현을 켜다가 늙은 악기의 울림통에서 갑자기고목나무의 울음소리를 끌어내는 그의 첼로를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그의 연주는 골목 저 멀리에서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일갈하는 노인의 꾸짖음 같기도 했다. 특히 두 대의 첼로가 비슷한 세기로 협주하는 부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그중에도 곡이 끝나기 전의 협주는 첼로 두 대가 아니라 두 성악가가 마주 보며 이중창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화음을 넣던 다른 첼로는 금방 뒤로 한발 물러서면서 바이올린들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갖고 있던 장한나 음반들에는 '자클린의 눈물'이 없었다. 유튜브를 뒤져 찾아낸 것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피아노와 협주한 것뿐이었다. 장한나의 이 음반은 죄다 품절이었고 중고 시장에도 없었다. 음원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었으나 이 곡은 음반을 오디오에 걸어 들어야만 했다.

인터넷에는 '자클린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이 프랑스 작곡가 오펜바흐의 곡을 베르너 토마스라는 첼리스트가 뒤늦게 발굴했고 요절한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기려 제목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널려 있다. 나중에 전문가에게 물으니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다. 오펜바흐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제목을 붙였고 또 간혹 연주되기도 했으나 베르너 토마스가 처음 음반으로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 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옥이 이모'라는 드라마에서 옥이 이모가 슬플 때마다 이 곡이 나와 유명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장한나, 오펜바흐, 베르너 토마스, 자클린 뒤 프레, 옥이 이모


어쨌든 이 곡이 수록된 장한나 앨범을 어렵사리 구해 오디오에 걸고 들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음악을 찾아 듣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장한나가 '라데츠키의 저주'를 푼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12/20161012037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