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기자 김보경 기자
입력 2025.01.18. 00:54 업데이트 2025.01.18. 07:30
“오케이알(OKR·Objective and Key Results·목적과 핵심 목표) 싱크(Sync·동기화)는 최대한 아삽(ASAP·As Soon As Possible·가능한 한 빨리)으로 진행합시다(이번 업무의 핵심 목표 달성과 관련한 상황 공유·최신화는 최대한 빨리 합시다).”
취업준비생 황준혁(26)씨는 최근 경기 성남 판교의 한 IT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한 뒤 한동안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정체 불명의 언어가 공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작업 마치면 핑(ping·연락) 주세요” “해당 이슈(issue·문제)는 로컴(low communication·소극적인 대응)으로 갑시다”라는 말이 난무했다. 황씨는 “뭘 하라는 건지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IT 업계에선 이 같은 언어를 ‘판교 사투리’라고 부른다. 판교에 밀집한 IT 분야 기업·스타트업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한국어는 조사나 어미만 활용하고 핵심 명사·동사는 대부분 개발·경영 분야 영어 단어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판교 직장인들은 이런 언어를 업무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한다. “감기 이슈로(감기 때문에) 늦었어” “그런 재밌는 일은 아삽(가능한 한 빨리) 팔로업(후속 조치)해줘”라는 식이다.
‘판교 직장인’이 되려는 취업준비생들은 이 같은 판교 사투리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판교의 한 IT 회사에서 인턴 후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는 정모(25)씨는 “판교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려면 ‘판교 사투리’를 미리 알아둬야 한다”며 “나 혼자 ‘판교 사투리 코칭 AI(인공지능)’도 만들었다”고 했다. 취준생들은 “판교 생활에 잘 적응할 인재라는 것을 면접이나 채용 전환형 인턴에서 보여주고 싶은데, 그 시작이 업무 용어를 숙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사에게 용어 질문하는 것이 실례일 수 있으니 미리 공부한다”고 말한다.
인터넷에는 ‘판교어 번역기’ ‘판교 사투리 사전’까지 등장했다. ‘허슬(hustle·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한다는 뜻)’ ‘시레벨(Chief level·경영진)’ 등 판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의 뜻과 예문 300개를 표로 정리한 파일을 5000원에 판매하는 곳도 있다.
판교에 밀집한 기업은 대부분 고연봉에 사내 복지가 우수하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곳도 많아 취준생 인기가 높다. 판교 직장인들은 “과도한 경쟁 때문에 판교 사투리의 효용성이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IT 업계 6년 차인 박모(32)씨는 “취업준비생은 남들이 한다고 하면 따라 해야 할 것 같고, (경쟁력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업계 은어까지 예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5/01/18/6IIUKBBE7FEUXBNQY7IRINYOE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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