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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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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西進하는 '백색 가전' 패권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4.08.07. 20:23 업데이트 2024.08.08. 06:21 과거 프로레슬링 TV 중계가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모여들었다. 그때 스위치를 켜고 30초 이상 기다려야 화면이 뜨던 미국산 제니스 진공관 TV를 보았다. 당시엔 이 TV가 있는 집은 부잣집이었다. 이 TV는 시간이 흐르며 금성사 흑백 TV, 삼성전자 컬러 TV로 바뀌었다. 한국 가전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몇 년 전 독립한 아들 자취방에 가니 TV, 무선 청소기, 선풍기, 제습기가 모두 중국산이었다. 아들은 “가격, 품질 모두 만족”이라고 했다. ▶백색 가전이란 말은 영어 ‘White Goods’에서 유래했다. 백색 가전 산업의 초대 제왕은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
中서 개발하고 한국이 팝니다… 전자제품 생산의 진화 단순 위탁서 ODM·JDM 변신 이해인 기자 입력 2024.08.07. 00:40 업데이트 2024.08.07. 09:32 LG전자가 물걸레 기능이 탑재된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조만간 출시한다. 이 제품은 LG전자가 단독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다. LG전자와 중국 선전에 있는 생산 전문 업체 실버스타그룹이 함께 기술 개발과 설계를 진행했다. 최종 생산은 실버스타가 담당한다. 이른바 JDM(Joint Developing Manufacturing·합작 개발 생산) 방식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로봇청소기 개발·생산에 특화된 전문 제조 업체의 역량과 LG전자의 품질 기준, 디자인,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제품을 개발한 것”이라며 “성능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전자 제품의 생산 방식이 ..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NASA는 왜 6200억짜리 달 로버를 쏘지 않고 해체하나 박건형 기자 입력 2024.08.06. 00:03 업데이트 2024.08.06. 00:09 우주인 대신 달과 화성, 혜성과 소행성의 신비 밝힌 로버 NASA, 4억5000만달러 들인 달 남극탐사 로버 계획 포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예산과 일정 지연은 거대 과학 숙명 1972년 12월 11일, 아폴로 17호 우주인 유진 서넌과 해리슨 슈밋이 달에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도 마지막으로 달을 다녀온 우주인으로 남았다. 인류의 위대한 도전에 세계가 흥분하고 있을 때 전의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달 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한 옛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21호가 아폴로 17호 우주인들이 걸었던 지점에서 북쪽으로 170km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다음 날 루나 21..
[만물상] 라이벌들의 동지애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입력 2024.08.05. 20:56 업데이트 2024.08.05. 23:59 2016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미국 무대 고별전을 치렀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호주 카리 웹에게 안겨 울었다. 전성기를 함께했던 라이벌이자 친구 사이였다. 박세리의 연장전 6승 중 3승은 웹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그래도 웹은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진심임을 아는 박세리는 진한 눈물을 쏟았다. ▶한일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는 여자 500m 종목에서 경쟁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3연패를 노리던 이상화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눈물 흘리자, 우승자 고다이라가 다가가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서 고다이라가 17위에 머물..
[新중동천일야화] 하니예 피살… 이스라엘은 전쟁 끝낼 생각이 없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입력 2024.08.05. 00:02 업데이트 2024.08.05. 00:17 이스라엘은 거침없었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폭살했다. 가자에서 교전 중인 군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죽였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휴전 협상을 지휘하고 있던 하니예를 죽인 것은 분명한 신호다.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휴전은 더욱 어려워졌고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본질은 네타냐후의 생존 게임이다. 전쟁에 올라타 위기를 넘기고 권력을 지키려는 의지다.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최악 과실은 적의 기습을 막지 못한 것이다. 적에 둘러싸여 네 차례 전쟁을 겪고 수시로 테러를 당해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욤키푸르 전쟁, 즉 1973년 4차 ..
[만물상] 전기차 화재 공포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24.08.04. 20:49 업데이트 2024.08.04. 23:54 소음도 때로는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전기차가 그렇다. 전기차는 무소음이 큰 장점 중 하나지만 보행자가 기척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무소음 공포’가 일자 유럽과 미국은 각각 2019년, 2020년부터 이를 규제 대상에 올렸다. 유럽은 전기차가 시속 20㎞ 미만으로 달릴 때, 미국은 시속 30㎞ 미만일 때 경고음을 내는 장치를 달게 했다. 차 안에 가상 엔진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붙여 인공 소음을 내는 방식이다. 우리도 2020년에 이를 도입했다. ▶올 초 미국에선 전기차 ‘방전 공포’가 일었다. 체감온도 영하 50도 안팎의 북극 한파가 몰아친 시카고 등에서 전기차가 대거 방전된 것이다. 충전소마다 긴 대기 줄이 ..
[단독] 교사 임용고시, 내년부터 '추가 합격' 도입 윤상진 기자 입력 2024.08.03. 05:02 학령인구 줄자 교사 채용 정부 매년 줄여 일선 교육청 "정규 교사 부족… 뽑게 해 달라" ‘임용고시’라 불리는 유·초·중·고 교원 임용시험에 ‘추가 합격’ 제도가 도입된다. 지금까진 시험에 합격한 뒤 교사 임용을 포기하는 사람이 생겨도 결원을 메우지 않고 모자란 인원만큼 다음 해에 더 뽑았다. 앞으론 후순위 지원자를 추가 합격시켜 곧바로 정원을 채운다는 것이다. 2일 교육부는 교원 임용시험 규정에 추가 합격 조항을 추가한 ‘교육공무원 임용 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엔 최종 합격자가 학교에 배치되기 전 대기 기간에 임용을 포기하거나 전과 등 결격 사유가 밝혀져 탈락하는 경우 추가 합격자를 뽑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
[만물상] 남성 염색체 가진 여자 선수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8.02. 20:47 업데이트 2024.08.03. 00:10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성전환자다. 길에서 짝짓기 하는 뱀 암컷을 막대로 쳤다가 뱀의 저주를 받아 여자가 됐다. 7년을 여자로 산 뒤 이번에는 수컷 뱀을 때려서 다시 남자가 됐다.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한 몸에 남녀 생식기를 모두 지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했다. 오늘날 의학에선 이를 간성(間性·intersex)이라고 한다. ▶성전환이나 간성 같은 성적 정체성이 종교나 성 윤리 논란만 빚는 것은 아니다. 신체 능력으로 겨루는 스포츠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로 떠올랐다. 재작년 미국에선 남자 수영 선수가 여자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193㎝ 거구와 긴 팔로 여자 ..
부엌·화장실 갖춘 농막… 주말 농부 위한 '10평 쉼터' 허용 '농촌 체류형 쉼터' 12월 도입 강우량 기자 입력 2024.08.02. 00:50 대전에 사는 10년 차 주말 농부 박병희(64)씨는 집에서 차로 30분가량 걸리는 공주에서 100평짜리 텃밭을 가꾸고 있다. 텃밭에 6평 규모 농막(農幕)도 마련했지만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농막에서 밥을 해 먹거나 샤워를 하는 게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느라 땀에 흠뻑 젖어도 수건으로 몸을 닦는 게 전부”라며 “농막에서 잠을 자는 것도 안 된다고 해, 피곤한 와중에도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올해 12월부터 박씨와 같은 주말 농부들을 위한 ‘농촌 체류형 쉼터’가 도입된다. 기존 농막의 면적 제한이 20㎡(6평)인데, 농촌 체류형 쉼터는 33㎡(10평)까지 조성할 수 있다...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정치적 개인이 '메뚜기떼'와 싸운다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4.08.02. 00:02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정치에는 적용되지 않는 게 분명해 보인다. 1만 시간이면 하루 3시간씩 10년, 하루 10시간이라면 3년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29세 때 최연소 상원 의원에 당선되어 팔순에 이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거의 정치의 신(神)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그도 주변의 조언과 압력으로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자신의 야망보다 국가와 당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변을 내세우긴 했지만, 정치는 결코 개인기로 돌파할 성질이 아니라는 걸 노장이 모를 리 없다. 겉으로는 강하고 개성 넘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도 사정은 크게..
[만물상] 중독시키기 위한 뇌과학 연구 곽수근 기자 입력 2024.08.01. 20:28 업데이트 2024.08.01. 23:34 10여년 전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움직임이 많아진 신체 부위가 있다. 엄지손가락이다. 아침 기상 직후부터 잠들기 직전 늦은 밤까지 엄지는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 좌우로 밀어대느라 바쁜 것이다. 지난해 영국 연구진 조사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움직이는 스크롤 이동을 거리로 환산해보니 1인당 평균 396m에 달했다. 에펠탑(330m)보다 높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앱은 ‘바닥’이 없다. 아래로 내려도 내려도 계속 게시물(피드)이 이어지는 ‘무한 스크롤’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뇌과학자들은 카지노에 시계와 창문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지적한다. 도박에만..
'소셜미디어 중독' 美, 법으로 차단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입력 2024.08.01. 01:20 상원 '청소년 보호법' 2건 통과 운영사가 유해 콘텐츠 걸러야 어린이와 청소년을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지난 30일 미국 연방 상원에서 통과됐다. 유튜브·메타(페이스북)·X(옛 트위터)·틱톡 등 소셜미디어 운영사가 미성년자를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부과하도록 한 법안이다. 뉴욕타임스는 “소셜미디어가 유발할 수 있는 정신 건강 장애, 학대, 성적 착취 등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도록 강제하는 ‘주의 의무(duty of care)’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걸러내지 못하거나 기능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지게 될 수 있..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올림픽까지… 당신에게 마라탕은 무엇인가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4.08.01. 00:00 전기마취와 닮은 맛… 메달 딴 선수들 소감도 "마라탕 먹고파" 매운맛의 몽롱한 기쁨, '매운 존재' 되겠다는 心身 요청일까 담백한 맛으로 감당하기에 대한민국은 고강도 고자극 사회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으로 금메달을 딴 여고생 선수도, 역시 사격으로 금메달을 딴 성인 여성 선수도 마라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수상 소감에 마라탕이라니! 그 말이 나에게만 훅 들어온 게 아닐까 했지만 낭보를 전하는 많은 언론사가 ‘마라탕’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걸 보았다. 마라탕 전성시대구나 싶었다. 마라탕이 유행하기 시작한 지 꽤나 오래인데 여전히 인기가 있고, 인기가 식기는커녕 더 세를 불려 가는 느낌이다. 변화가 빠른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유행이 있..
[만물상] 사라지는 DJ 동교동 사저 배성규 기자 입력 2024.07.31. 20:28 업데이트 2024.07.31. 23:52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속주인 달마티아의 작은 마을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이 들어 은퇴한 그는 고향에 7m 높이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 같은 사저(私邸)를 지었다. 후임 황제가 “로마로 돌아와 도와달라”고 했지만 “양배추를 심고 돌봐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가 죽고 300년 후 야만족 침공 때 주민들이 사저로 피신해 목숨을 구했다. 이후 주변에 건물이 잇따라 들어섰고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 스플리트가 됐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쓴 제퍼슨 대통령은 버지니아 시골 마을에 손수 집을 지어 58년간 살았다. 회랑과 연못 등 로마 건축 양식을 딴 아름다운 사저엔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던 자동 여닫이문과 날짜·..
'건설 현장 공갈' 한국노총 산하 노조 전직 간부들 2심도 징역형 송원형 기자 입력 2024.07.30. 12:34 업데이트 2024.07.30. 14:43 건설 현장에서 공사를 방해하겠다고 협박해 1억여원을 뜯어낸 전 한국노총 산하 노조 간부들이 2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재판장 안희길)는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공동공갈)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국노총 전국건설연대노동조합 전 위원장 서모(59)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서씨와 함께 기소된 이모(45)씨 등 노조 전 간부 3명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전직 노조 간부 6명에게는 징역 10개월∼1년 6개월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노조의 지위를 이용해 철근콘크리트 시공업체들을 협박해 장기간에 걸쳐 다액의 돈을..
[자작나무 숲] 석양이 아름다운 집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4.07.29. 23:58 업데이트 2024.07.30. 00:15 오래전 한 시인이 ‘석가헌(夕嘉軒)’이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자랑하셨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 평화롭고 의젓한 어떤 정경이 피어난다. 아름다운 석양 무렵이다. 그가 노래한 “이것들 저것 속에 솔기 없이 녹아/ 사람 미치게 하는/ 저 어스름 때”(정현종, ‘나의 명함’) 내 마지막 하루도 저물면 어떨까 싶었다. 겸허한 노후 안식처에 그 이름을 붙이리라 내심 탐도 냈었다. 태양이 빛 갈채 속에 무대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때는 둘 다 너무나 장엄하고 압도적인 시간인지라 일출과 일몰 중 어느 하나만 택하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여류 시인 츠베타예바는 노을 녘에 죽고 싶다고, 아침노을과 저녁노을 ..
[만물상] 활과 한국인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7.29. 20:24 업데이트 2024.07.29. 23:26 활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한국에 있다. 울산시 울주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다. 한민족은 신석기 시대, 늦어도 청동기 시대 초기에 이미 활을 쐈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활 잘 쏘는 나라의 원조로 꼽히는 나라가 서기 2~3세기 중동의 지배자였던 파르티아다. 말 타고 달리며 후방을 향해 활을 쏘는 게 ‘파르티아 사법’이다. 이런 고난도 궁술은 동쪽으로 전해졌는데 우리도 이를 썼다는 사실이 5세기 고구려 고분 무용총에 그려진 수렵도로 밝혀졌다. ▶고구려 건국 설화인 동명왕 이야기에 ‘주몽이 7세부터 손수 활을 만들었고 살을 날리면 백발백중이었다’고 돼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신궁(神弓)으로 불렸..
[단독] 교권 추락에... 10년차 미만 초중고 교사 작년 576명 떠났다 "학부모 악성 민원 더는 못 버텨" 윤상진 기자 입력 2024.07.29. 05:02 업데이트 2024.07.29. 06:51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A(28)씨는 올해 초 교사를 그만뒀다. 그가 작년 담임을 맡았던 반에서 두 학생이 서로 다툰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한 게 계기였다. 한 학부모가 자기 아이 편을 들라며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걸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는 자녀의 바지 주머니에 녹음기를 넣어 A씨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고 한다. 그는 “5년간 교사로 일했는데 매년 심해지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사표를 냈다”고 했다. 20~30대 젊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본지가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교육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0] 풀잎 하나 문태준 시인 입력 2024.07.28. 23:52 업데이트 2024.07.29. 06:09 풀잎 하나 깊은 산골짜기 밀림에 깃들면찰나와 영원이 하나같다지나간 시간도 다가오는 시간도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만 같다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흔들리는나는 조그만 풀잎 하나꿈꾸다 꿈속에 든 풀잎 하나-이태수(1947-) 심곡심산(深谷深山)의 산림(山林)을 더러 만나게 되지만 대개는 능선과 높은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눈으로 살피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산에 들어가서 작은 풀잎에 눈이 간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 가만가만히 흔들리는 풀잎에 관심을 둔다. 산림은 하나의 생명 세계로서 순간과 영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데 조화돼 한 덩어리를 이루면서 섞여 있는 곳인데, 시인은 거기서 하나..
♥[만물상] "사지가 타들어 가는" 마지막 스퍼트 최수현 기자 입력 2024.07.28. 20:54 업데이트 2024.07.28. 23:58 ▶마라톤보다 긴 거리를 4시간 가까이 걷는 육상 경보 50km는 ‘죽음의 레이스’로 불린다. 막판 스퍼트 때는 온 힘을 짜내 100m를 17~18초에 주파하는 스피드를 내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매우 크다. 이 종목 한국기록 보유자인 박칠성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45km 지점에서 2위로 올라선 뒤 경쟁자들 막판 추격을 뿌리쳤다. “마지막 2km를 남겨두곤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응원 소리가 욕으로 들리더라.” ▶1992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은 ‘한국 쇼트트랙 왕조’의 서막을 연 대회였다. 당시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기훈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남대문·세운상가를 강북르네상스 양대축으로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4.07.26. 00:02 고대 로마 '空中 수로' 아래서 밥 먹다 생각했다 왜 남대문 옆에선 차나 식사를 할 수 없을까 광화문광장을 남대문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시장 바뀌면 철거·보존 놓고 싸우는 세운상가 리스본 성당처럼 외벽 남겨 재구성하면 어떨까 종묘~을지로까지 500m 新녹색공원 탄생할 텐데 스페인 세고비아에 가면 고대 로마가 만든 애퀴덕트 수로가 남아 있다. 이 시설은 17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시내에서 물을 끌어다가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서 만든 인공 수로 건축물이다. 총길이 813미터, 높이 30미터의 크기로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 전에 이러한 엄청난 건축물을 만들어서 도시의 기반 시설을 구축했다는 점은 경이롭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만든 가장 큰..
[만물상] 습도 100% 곽수근 기자 입력 2024.07.25. 20:35 업데이트 2024.07.26. 00:08 미 프로야구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해발고도 약 1600m에 자리 잡아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가 홈런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구단 측이 도입한 시설이 ‘야구공 가습 저장고’다. 습기를 머금은 공이 사용되면서 홈런 수가 25%나 줄었다. ▶스위스 물리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최초의 습도계를 개발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1783년 내놓은 첫 습도계는 머리카락의 수분 흡수 정도에 연동한 도르래와 눈금의 움직임으로 습도를 계산하는 ‘모발 습도계’였다. 비 오는 날 곱슬머리가 고불고불 더 말리고, 펌(파..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힐빌리의 노래'는 脫자유주의의 경전을 꿈꾸는가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4.07.24. 23:58 역사학자 스테판 링크는 그의 저서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서 20세기 자본주의 역사에 관한 신선한 재해석을 들려준다. 컨베이어 벨트와 흐름 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 양식인 포드주의는 대량생산 체제와 그에 따른 대중사회의 등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20세기 중엽 자본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포드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으레 따라오는 자유주의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링크에 따르면 포드주의는 오히려 자유주의를 향한 주변부의 반란으로서 등장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는 미국 중서부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포드주의 거대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미국 제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그 공장들이..
[만물상] 서울의 세계 유명 화랑들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7.24. 20:36 업데이트 2024.07.25. 00:02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 대국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다만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만은 그대로였다. 세계 예술의 수도는 여전히 프랑스 파리였다. 그런데 소련과 나치 독일이 등장하자 몬드리안·샤갈·뒤샹 등 많은 화가가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 도착한 몬드리안은 대도시 빌딩의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그렸다. 2차 대전을 분기점으로 뉴욕은 파리를 밀어내고 세계 예술의 수도가 됐다. ▶기업가들이 변화에 앞장섰다. 솔로몬 구겐하임과 그의 조카 페기, 섬유재벌인 콘 가문의 클라리벨·에타 자매가 유명했다. 솔로몬은 뉴욕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고, 페기는 ..
봉화 '농약 커피' 미스터리… 5명 중 1명은 사흘 뒤 쓰러져 복날 음독 사건 4대 의문점 봉화=권광순 기자 노인호 기자 입력 2024.07.24. 01:23 업데이트 2024.07.24. 06:01 초복인 지난 15일 봉화군 봉화읍 경로당 회원 41명은 마을 식당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다. 이 중 회장 A씨 등 5명이 농약을 먹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3명은 15일, 1명은 16일, 나머지 1명은 18일 고통을 호소하며 각각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누가 언제·어떻게 농약을 탔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 사흘 뒤 나온 피해자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16일 잇따라 입원한 경로당 회원 4명은 15일 식당 같은 테이블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경로당으로 가 커피를 나눠 마셨다고 한다. 경찰은 당초 식당 음식을 의심했으나 이들이 커피를 마신 ..
[5분 명상] "그냥 아프기만 하면 돼" 일상 속 쉼을 선물하는 반가운 특별 손님 '감기' 성소은·'반려명상' 저자 입력 2024.07.24. 00:30 가끔 맞이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소식 한번 없다가 불현듯 찾아옵니다. 무례한 듯 반가운 특별한 이 손님은 ‘감기’입니다. “나 감기야.” 분주한 일상은 저절로 ‘잠시 멈춤’ 상태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아플 뿐’ 모드로 전환합니다. 어차피 맞은 손님이니 ‘그’를 환대합니다. 세상에 나와 감기만 있는 것처럼 온전히 함께합니다. 여러 감기 증상 중 하이라이트는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은 몸살 기운입니다. 몸이 어디론가 아스라이 사라지나 보다 하면 살아있는 의식이 누워있는 몸을 보며 말합니다. “어서 와! 여기는 감기 월드야. 너는 자유야.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푹 아프기만 하면 되는 거야.” 몸이 답합니다. ..
[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대한민국이 네카팡 공화국입니까?" 1회 #포털의 책임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24.07.22. 23:58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근미래의 풍경 1회 #포털의 책임 “우리 후보자는 대한민국 장관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후보자는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질문을 던진 이는 ‘막말테이너’라는 별명이 있는 3선 의원이었다. 상대에게 면박을 주는 일로 팬덤을 얻어서였다. 장관 후보자는 허리를 펴고 대답했다. “실력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보자는 실..
[일사일언] 지하철 놓친 덕에 되찾은 인연 이재욱 방송작가 입력 2024.07.23. 00:32 약속이 있는데 집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늦게 나왔다. 일찍 나오는 날은 버스도 빨리 오고 지하철도 내 발걸음에 딱딱 맞춰서 도착하는 거 같은데, 늦었다는 예감이 드는 날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10초 전에 버스가 출발하고, 지하철 계단을 다다다닥 뛰어서 내려갈 때 지하철 문이 닫히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역시 늦었다는 예감이 들었고, 평소처럼 지하철 계단을 다다다닥 뛰어서 내려갔는데 역시나 치익- 지하철 문이 닫히고 열차는 출발했다. 아, 이놈의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구나. 한숨 쉬고 있는데 나보다 더 늦게 계단을 턱턱턱턱 뛰어 내려오는 사람이 있길래 돌아봤더니, 어라! 모르는 사람인데 얼굴은 아는 느낌? 그런데 상대방도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랐고, 우리..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올림픽은 과학인데… 전신수영복은 왜 무대에서 사라졌나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입력 2024.07.21. 23:59 업데이트 2024.07.22. 00:40마찰저항 줄이며 혁신… 신기록 쏟아지자 세계수영연맹이 금지와플기에 우레탄 부어 밑창 덧댄 운동화, 접지력·안전성 강화올림픽은 과학과 인간 본질 드러내는 이벤트… 파리를 기대한다이번 주 파리 올림픽이 시작된다. 스포츠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이다. 일본의 운동화 브랜드 아식스(ASICS)가 라틴어로 “Anima Sana In Corpore Sano”, 즉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영혼이 깃든다”라는 의미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스포츠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극복하며 발달한 인체 과학 덕분이었고, 이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어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인류는 자연..
[만물상] '역사 유산' 소록도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7.21. 20:33 업데이트 2024.07.22. 00:39 구약성서 레위기엔 한센병에 대한 인류의 오랜 공포와 혐오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의사는 물론이고 환자조차 스스로 ‘부정한 자’라고 선포해야 한다. 세상은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치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부당한 혐의까지 덧씌웠다. 시인 서정주는 한센인들이 당한 억울한 차별과 그로 인한 울분을 시 ‘문둥이’에서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고 썼다. ▶우리에겐 그런 아픔의 결정체가 소록도였다. 1916년 일제가 이곳에 자혜의원을 세운 뒤 오래도록 금단의 땅이었다. 육지와의 거리가 1㎞가 채 안 되지만 발길이 끊겼다. 환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8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