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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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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은자의 감화력 문태준 시인 입력 2016.10.10 03:09 은자의 감화력 곁에 은자가 즈믄해 고요인 양 단좌하여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 맑아진 공기를 느껴요. 시력도 좋아진 듯 먼 산 바위의 주름살이나 이끼도 보여요. 먹통이던 귀도 열려서 은자의 가슴속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나..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을 뜻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6.10.08 03:01 가을 뜻 베개 베고 뒤척이다 밤중에 일어나 앉자 등불 심지 돋우고서 생각에 잠겨든다. 숲속이 휑해져 바람은 쉽게 지나가도 하늘이 멀어져 기러기는 천천히 날아온다. 비가 오려는지 꿈속까지 들이치는데 가을빛은 시마저도 물들게 하..
[가슴으로 읽는 시조] 조약돌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2016.10.07 03:11 조약돌 달각달각 구르다가 동글동글 맴돌다가 매몰찬 동댕이에도 또록또록 눈을 뜨고 쪼매한 몸뚱아리를 다시 곧추세운다. 지나온 골목골목 눈물만 있었으랴. 날 선 각을 벼리고 모난 구석 궁글리는 동안 파도도 지우지 못한 원 하나를 품었다. ―윤현..
[조인원의 사진산책] 카메라는 어깨에 걸치는 명품 백이 아니다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입력 2016.10.06 03:14 모두가 쉽게 사진 찍는 시대… 잘 나온다고 '진짜 사진'일까 원하는 사진 찍고 싶으면 장비나 기술에 신경 쓰기보다 구도나 광선에 시간 투자해 다르게 보고 다르게 찍어야 "무슨 카메라를 사야 해요?" 직업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은 이런 ..
[가슴으로 읽는 동시] 할머니와 아기염소 이준관 아동문학가 입력 2016.10.05 03:06 할머니와 아기염소 아기염소가 풀을 뜯는 사이 할머니는 그 옆에서 조알조알 졸고 있다 배가 부른 아기염소는 할머니가 깰까 봐 그 옆에서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염소 꼬리 같은 저녁 해가 서산으로 꼬리를 감춘다 아기염소가 그만 집에 가자고 매애..
[ESSAY] 은퇴? 죽음? 무슨 당치 않은 소리 권이복 남원 도통동 성당 주임신부 입력 2016.10.05 03:11 나는 80이나, 90, 100년 한정된 삶을 살다 사라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영원에서 와서 영원까지 살아 존재하는 나… 그 영원의 일부를 사는 것이다 낯설다. 아직도 어색하다. 내가 사제요 신부라는 사실이. 가끔 누군가 "신부님!" 부르면..
[가슴으로 읽는 시조] 가을, 상수리나무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2016.09.30 03:12 가을, 상수리나무 누가 읽지도 않고 말없이 지나갔네 행여, 부딪힐까 봐 온몸 웅크린 채 먼지 낀 둔탁한 건반 툭, 치고 가는 가을 ―윤경희(1961~ ) 투둑 툭 지는 게 많아지는 즈음이다. 가을 산은 떠날 준비들로 특히 더 분주하다. 그중 도토리 떨어지는 ..
[박해현의 문학산책] 석류는 시인의 머리를 닮았을까, 가슴을 닮았을까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6.09.29 03:13 석류가 영글어 터지는 계절 성숙이고 파열이고 분출이며 시큼한 슬픔이거나 환희인 열매 알갱이 하나하나에 생각 쏟아져… 붉은색은 우리 자랑거리인 푸른 가을 하늘과 잘 어울려 한여름 내내 뙤약볕에 시달리던 석류(石榴)가 여물어 붉은빛으로 ..
[가슴으로 읽는 동시] 통당토동당 이준관 아동문학가 입력 2016.09.28 03:01 통당토동당 조롱조롱 붉은 대추 막대기로 내리쳤더니 앞마당에 통당 강아지 밥그릇에 토동당 담장 너머로 통당 수챗구멍으로 토동당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통당토동당 ―주미경 (1969~) 가을은 항상 그렇듯 '익어가는 소리'와 '익어가는 빛깔'로 찾아온..
[ESSAY] 하늘의 초대장 김기석 청파교회 담임목사 입력 2016.09.28 03:04 일상의 타성에 갇힌 囚人이 되면 삶이 잔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낯익은 세계에 머물면 안전하지만 삶이 준비해둔 황홀한 신비 놓쳐 풍경 대하듯 무심했던 관성 깨고 이웃의 초대에 응할 때 새로워져 조그마한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휘적휘..
[한국의 老鋪] 100년 가게 100년 기업 생존 DNA를 찾아 주간조선 [2425호] 2016.09.26 조동진 기자 zzang9@chosun.com 시장은 전쟁터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지 않을 뿐. 그런 시장에서 인간의 100년 장수보다 더욱 힘든 것이 가게와 기업의 100년 생존이다. 하루에도 수백 개가 넘는 새로운 가게와 기업들이 저마다의 성공을 꿈꾸며 세상에 등장한다. ..
[가슴으로 읽는 시] 구월(九月)의 시 문태준 시인 입력 2016.09.26 03:01 | 수정 2016.09.26 03:24 구월(九月)의 시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구월(九月) 기러기 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 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구월(九月). 구월(九月)의..
자녀 일부러 수두 걸리게 하는 부모들 문현웅 기자 김경필 기자 입력 2016.09.23 03:00 | 수정 2016.09.23 14:53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 논란 - 일부 부모들, 예방접종 거부 백신이 장애 등 유발한다고 믿어 자연 면역력만으로 병 극복 유도 - 서구서도 한때 유행하다 '금기시' "잘못된 정보로 아동 학대하는 짓… ..
[남정욱의 영화 & 역사] 희생, 인공지능은 따라 하지 못할 인간만의 능력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입력 2016.09.22 03:11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건 효율 영화 '마션'의 동료 구출 작전처럼 어이없을 정도 비효율 납득 못할 것 인간의 위대한 점은 매몰된 광부 한 사람을 위해 본 적도 없는 여럿이 목숨을 거는 것 영화 마케팅을 하면서 배운 나쁜 버릇이 ..
[ESSAY] 일흔에도 꽃씨처럼 원숙자 수필가 입력 2016.09.21 03:03 퇴직 후 시작한 무모한 농촌 생활…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귀가하는 정신없이 바쁜 날의 연속이지만 여전히 하고픈 일 많은 이 맘을 다독이며 달래는 자연 있기에 농장에서 살어리 살어리랏다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기를 하루 중 낮이라고 한다면, 퇴직 ..
[가슴으로 읽는 시] 오래 한 생각 문태준 시인 입력 2016.09.19 03:09 오래 한 생각 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정릉에서 친구에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6.09.18 03:12 정릉에서 친구에게 이런 곳에 작은 초가집 짓고 산다면 그게 바로 부생(浮生)에서 늙음을 막는 방법이지. 사시사철 솔향기 풍겨서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하루라도 계곡 물소리 들으면 십 년은 더 살겠군. 그윽한 새는 사람을 만나도 울 줄..
[ESSAY] 추석, 이제는 가족 파티다 권지예 소설가 입력 2016.09.14 03:02 제수 음식 차리느라 고생했던 추석 이젠 조촐한 메뉴로 상 차려 제사보다 파티 의미 커지고 자손 모두 모여 즐기니 얼마나 감사한 시간인가 추석 명절이 행복했던 건 어린 시절이었다.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추석빔이라는 새 옷도 입을..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그 댁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김윤덕 문화부 차장 입력 2016.09.13 03:05 착하고 야무진 아내, 대가족 중노동 명절에 응석도 불평도 없더니 몸과 마음에 병이 났네 억척 여인인 줄 알았더니 따뜻한 엄마 품 필요했네 제 이름은 마동수입니다.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의 만년부장입니다. 부장만 10년짼데 빽, 능력, 입담 모..
[골프] 내가 골프를 못 치는 46가지 핑계 주간조선 [2424호] 2016.09.12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 si8004@naver.com #1 환갑이 지나면 ‘깜빡’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좀전에 약을 먹었던가?” “(신발끈을 매면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건망증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시달리게 된다. 약 한 번 안 먹는다고 탈이 생기지 않고, 행선지를 잊었다면 잠시 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골프 치러 갈 때 건망증이 도지면 낭패를 본다. 어떤 60대 중반인 사람은 1년에 한두 번씩 옷 넣는 가방을 차 드렁크에 싣지 않아 엄청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골프화를 안 가져가 라운딩 내내 애를 먹을 뻔했다. 얼마 전 골프장에 도착해 로커룸에서 신발을 챙기는데, 집에 두고 온 게 아닌가. 1주일 전 빗속의 라운딩으로 신..
[가슴으로 읽는 시] 옛일 문태준 시인 입력 2016.09.12 03:09 옛일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버린 초가을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박성우(1971~ ) 우체국을 하나 지어서 하루하루의 기쁘고 설레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부치고 싶어 하는 시인이 여기 있다. 시인은 강마을에 살고 있다. 시인은 강가의 안개, 초가을 풋별 냄새, 싸락눈 내리는 겨울밤을 편지 봉투에 담아 누군가에게 보내고자 한다. 요즘엔 잘 여문 낱낱의 밤알, 초가을 귀뚜 라미 울음소리, 멀리까지 나 있는 길을 바라보는 키 큰 미루나무의 기다림 같은 것을 봉투에 담아 부칠 수 있겠다. 한가..
[가슴으로 읽는 동시] 언니와 동생 이준관 아동문학가 입력 2016.09.07 03:07 언니와 동생 열 살 된 언니가 세 살 된 동생 업고 산길 따라간다. 언니는 동생 좋으라고 달막달막 동생은 언니 좋으라고 까르까르 엄마가 일하는 남새밭 깔끄막길 오르는데 동생은 언니 등에 찰-싹 언니는 동생 엉덩이 바-짝 ―최종득(1973~ ) 집집마다 아이들이 서너 명은 되었던 시절 언니는 동생을 돌보아야 했다. 집안일과 농사일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 언니는 어린 동생을 업고 다녔다. 어린 동생 돌보느라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했지만 언니는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언니는 동생 좋으라고 엉덩이를 '달막달막'해 주고, 동생은 언니 좋 으라고 '까르까르' 웃어주는 오붓한 모습이 참으로 정겨운 동시다. 요즘은 저출산 사회가 되면서 자녀를 한 명만 두는 ..
♥[ESSAY] 여름 山寺에 두고 간 세상 걱정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 입력 2016.09.07 03:11 "모든 생명은 고통을 싫어한다" 연민 강조하는 달라이 라마 말씀 직장에서 직원은 서로 은인 관계 상대의 손을 내 손처럼 아낀다면 그곳은 환희에 찬 천상의 세계 이후의 삶도 수많은 가능성 열려 지난주 티베트 난민들이 거주하는 인도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가 개최하는 '아시아인을 위한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떠나기 전에 티베트 관련 영화를 본 덕분인지 만나는 사람들이 더 정겨웠다. '브링홈, 아버지의 땅'이라는 영화로, 티베트 난민이면서 세계적인 화가가 된 빅돌>릭돌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 했던 티베트에서 흙 20t을 2000㎞가 넘는 이곳 다람살라까지 17개월에 걸쳐 가져오..
♥[팀 알퍼의 한국 일기] 유행대로 한국인, 내 멋대로 유럽인 입력 2016.09.06 03:04 한국엔 뭉크 같은 예술가 없고 유럽엔 엑소 같은 예능인 없어 독특한 개인주의자 많은 유럽, 본능적으로 유행 거부하고 조직·팀워크에 탁월한 한국, 옷에서도 유행·주류 추구해 한국은 왜 톨스토이나 뭉크 같은 독창적인 예술가를 배출하지 못했을까? 반면 유럽에서는 왜 엑소나 트와이스같이 완벽한 춤 실력을 보여주는 예능인이 탄생하지 못했을까? 한국인과 유럽인의 패션에 대한 너무나도 다른 접근 방식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올가을 인천공항에서 런던까지 갈 계획이 있다면 패션에 관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인천공항에 나온 사람 대부분은 카키 외투, 청바지, 긴 팔 티셔츠 등을 입고 있다. 하지만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가슴으로 읽는 시조] 추청(秋晴)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2016.09.02 03:09 추청(秋晴) 필시 무슨 언약이 있기라도 한가부다 산자락 강자락들이 비단 필을 서로 펼쳐 서로들 눈이 부시어 눈 못 뜨고 섰나부다. 산 너머 어느 산마을 그 언덕 너머 어느 分校 그 마을 잔치 같은 운동회 날 갈채 같은 그 무슨 자지러진 일 세상에는 있..
♥[ESSAY]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입력 2016.08.31 03:08 대학 시절 어느 남학생이 건네준 당시엔 흔치 않던 달콤한 초콜릿 뒤늦게 사춘기 짝사랑 열병 앓아… 알고 보니 그는 초콜릿 예찬론자 특별히 날 위한 것이 아니었는데 달콤쌉싸름한 이별 같은 여운이… 요즘 연일 다크 초콜릿의 효능에 대한 정보가 내 귀를 자극한다. 심혈관 질환 개선, 피부 노화 방지 효과로 나를 유혹한다. 이 초콜릿 뉴스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젊은 날의 사랑 같지 않은 사랑이 떠올랐다. 나는 장애인에게 가장 친절하지 못하던 시절인 197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였다. 강의실이 보통 5층, 7층.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높은 산이라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못했다. 점심을 먹으러 그 산을 내려온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