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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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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뉴질랜드도 영국도 ‘담배 퇴출’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3.09.24. 20:47 업데이트 2023.09.25. 01:05 17세기 조선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지적한 흡연의 폐해는 오늘 기준으로 봐도 정확하다. ‘안으로 정신을, 밖으로 눈과 귀를 해친다. 머리카락이 세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가 빠지며 살이 깎이고 노쇠해진다’ 등 10대 해악을 꼽았다. ‘냄새가 독해 신명과 통할 수 없고, 재물을 축내며, 종일 담배 구하기에 급급해 잠시도 쉬지 못한다’고도 했다. 사회생활과 재산 형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니코틴 중독에 빠진다는 뜻이다. ▶흡연의 해악은 더 이상 논란 여지가 없다. 다만 일부에서 ‘세금 많이 내는 애국자’ 논리로 흡연을 합리화한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세금이 3300원을 넘고, 2021년 기준 연 3조..
박광온 사냥하듯 쫓아내고… 정청래가 임시 당대표 권한 행사 [李 체포안 가결 후폭풍] 김경화 기자 입력 2023.09.23. 03:00 업데이트 2023.09.23. 12:14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1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책임을 물어 박광온 원내지도부를 사실상 ‘불신임’하면서 지도 체제는 친명(親明·친이재명) 일색으로 바뀌었다.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수석 격인 정청래 최고위원 주재로 열렸다. 23일째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 박 원내대표의 사의 표명으로 그가 잠시마나 당대표 대행을 맡게 된 것이다. 정 최고위원의 첫 발언은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며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날 회의에 비명 성향의 송갑석 최고위원과 정태호 민주연구원장은 불참했다. 전날 밤 최..
[만물상] 국회 표결 무효표의 심리학 이하원 논설위원 입력 2023.09.22. 20:53 업데이트 2023.09.22. 23:52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개표에 참여한 의원들과 의사국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국회 표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무효표가 7장 나온 것이다. 한글로 ‘기권’이라고 쓴 표, 찬성과 반대를 의미하는 ‘가부’를 동시에 쓴 표 등 다양했다. 탄핵 찬성을 의미하는 ‘가’ 위에 동그라미를 쳐서 ㉮로 표기하거나 점을 찍어 무효표가 된 것도 있었다. 학력이 높고 정치 전문가들인 의원들이 규정을 몰라서 무효표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의 2014년 체포 동의안이 부결될 때는 이례적인 기록이 세워졌다. 국회의원 223명이 표결에 참여했는데, 무효표가 무려 24명 나왔다. 10명 중 한..
[김도훈의 유행민감] 목청 하나로 100만장 팔던 가수 시대는 갔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입력 2023.09.22. 03:00 주로 옛날 노래를 듣는다. 나는 요즘 노래를 들으려 노력하는 중년 남자다. 뉴진스는 매일 한 곡 듣는다. 팝도 열심히 듣는다. 미국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인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 ‘Vampire’는 정말이지 오랜만의 명곡이다. 몇 주 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자크 브라이언의 ‘I Remember Everything’은 장년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조니 캐시 이후 최고로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컨트리 가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뭐든지 열심히 업데이트하려 애쓴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르신을 비웃던 세대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비욘세와 리애나를 ..
[2030 플라자] 육체노동 현장에는 ‘법’보다 ‘보안관’이 필요하다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입력 2023.09.21. 03:00 “내 자식한텐 이런 일 안 물려줘야지.” 공장과 노가다판을 전전하며 흔히 들어왔던 말이다. 스물다섯 무렵 같이 페인트칠하던 아저씨에게 저 말을 들었을 때 문득 내 주변 풍경이 눈에 띄었다. 전봇대 인근에서 땀에 절고 페인트로 범벅된 옷을 입은 채 쭈그려 앉은 우리. 그런 우리와 애써 눈 마주치지 않으려 빙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순간 ‘이런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다시 서른 살. 차축 만드는 회사에서 손가락 부러지는 산재를 당했던 아저씨에게 저 말을 들었다. “니도 결혼하면 얼라들 공부 열심히 시키라”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때 ‘이런 일’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던 아저씨들의 심리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됐다. 내 선배들. 5..
배우자에 5년간 ‘시험감독 알바’ 몰아줬다...1억 챙긴 공기업 부장 김경필 기자 입력 2023.09.21. 00:02 업데이트 2023.09.21. 01:30 각종 자격증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직원 가족에게는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공단이 시행하는 자격증 시험에 감독관이나 채점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직원들의 배우자나 자녀 328명이 5년간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수당은 40억원이 넘었다. 한 부장의 배우자는 시험 감독을 5년간 422차례 하면서 한 번에 24만원씩 총 1억원을 받았다. 다른 간부의 배우자는 1년 중 278일을 시험 위원으로 일했다. 직원의 14세 아들이 시험 관리 보조를 했다며 13만원을 받아간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이 평소 감사를 잘 받지 않는 소규모 공공 기관 등 155개 기관을 들여다봤더니, 이런 기관들에..
[만물상] 외교 궤변 이하원 논설위원 입력 2023.09.20. 20:43 업데이트 2023.09.21. 06:09 군복 차림에 둥근 안경을 쓴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가 1941년 12월 마이크 앞에 섰다. 미국, 영국을 상대로 개전(開戰) 연설을 했다. “적의 도전을 받아 결연하게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주만 기습 선제 공격을 하는 순간인데도 ‘방어 전쟁’으로 포장했다. 궤변으로 시작한 태평양 전쟁은 궤변으로 막을 내린다. 1945년 8월 일왕 히로히토는 “일찍이 미·영 2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히틀러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교묘하게 꾸며내고 명분 없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궤변과 선동의 기술자였다. 그는 “인종적으..
“팁 받으면 갑질 늘어날 것”… 알바생들에 ‘팁 문화’ 물었더니 최혜승 기자 입력 2023.09.20. 14:27 업데이트 2023.09.21. 16:36 카카오택시가 ‘팁 지불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는 등 국내에서도 팁을 요구하는 곳이 속속 등장해 소비자들 사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비스 현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도 팁 문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알바천국이 현재 근무 중인 알바생 1116명을 대상으로 ‘팁 문화 확산’에 대해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55.4%가 팁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팁 문화를 긍정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는 ‘근무 중 더 큰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다’(51.1%, 복수응답)’는 점을 꼽았다. 이어 ‘정해진 임금 외 추가 소득이 생겨서’(46.9%), ‘좀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
[자작나무 숲] 美人의 초상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3.09.19. 03:00 애초 미인의 초상은 실제 모델을 앞에 놓고 그린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미인도 어딘가 결점이 있기 마련인지라, 고대 화가는 이 여자의 눈, 저 여자의 코, 또 다른 여자의 입 등을 끌어모아 조화로운 이상형을 완성해냈다. 그렇게 만든 초상을 통해 가령 눈은 어때야 하고, 코는 어때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 자리 잡았다. 문학은 미술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 시각적으로 그려진 미인에 대해서는 이렇고 저렇고 이의를 제기해도, ‘미인’이란 단어 자체는 반론이 불가하다. ‘미인’이라 하면 미인인 줄 아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미인인지는 각자 머리에 떠올리면 된다. 귀에 들린 멜로디보다 들리지 않은 멜로디가 더 달콤하듯(존 키이츠), 형..
[만물상] 슈링크플레이션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3.09.18. 20:56 업데이트 2023.09.18. 23:34 최근 프랑스 전역에 있는 대형마트 카르푸 진열대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제목을 단 이색 안내문이 등장했다. 펩시, 네슬레, 유니레버 같은 세계적 식품기업의 26개 제품을 사러 온 소비자들 누구든지 알 수 있게 ‘공급업자가 이 제품의 용량을 줄여서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고 큼직하게 써 붙인 것이다. 이 명단에 든 펩시의 립톤 아이스티 복숭아맛의 경우,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이 1.5L에서 1.25L로 줄어 가격 인상 효과가 20%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영어 단어 슈링크(shrink·줄어들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상승)을 합한 용어로, 10여 년 전 여성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도입했다. 제품 ..
뇌혈관질환 환자 5년간 21% 증가…“2030 젊은층 증가세 가팔라” 황규락 기자 입력 2023.09.18. 17:32 업데이트 2023.09.18. 21:28 최근 5년 간 뇌혈관질환을 겪은 환자가 2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환자는 60세 이상이었지만 젊은층의 환자 수도 증가세를 보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뇌혈관질환 진료 현황 결과를 18일 공개했다. 뇌혈관질환 환자 수는 2018년 96만7311명에서 2022년 117만1534명으로 21.1% 증가했다. 뇌졸중 환자 수는 같은 기간 59만1946명에서 63만4177명으로 7.1% 증가했다. 환자 수가 늘어나면서 진료비도 증가했다. 뇌혈관질환 환자의 연간 총 진료비는 5년 간 2조3166억원에서 3조52억원으로 29.7% 늘어났고, 1인당 진료비도 239만4928원에서 256만..
[7NEWS] 나랏빚이 10년새 2배?...모든 국민이 부담하려면 인당 2200만원 조선일보 입력 2023.09.18. 07:00 7NEW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557 안녕하세요. 7NEWS입니다. 복권 당첨이나 주식투자 성공 등 목돈이 들어온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개인 채무가 있는 경우 대개 빚부터 갚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개인이 이럴진대 국가는 오죽할까요. 올해 국민 한 명당 떠안은 나랏빚이 2200만원에 육박했습니다. 10년 만에 곱절이 뛴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 빚은 누가 갚아줘야 하는지 막막해집니다. 지난 17일 정부는 올해 말 국가채무는 1128조8000억이고,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189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가채무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돈을 빌려 생긴 빚입..
[르포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시위 공화국? 역설적으로 정부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입력 2023.09.18. 03:00 업데이트 2023.09.18. 07:28 서울경찰청이 운영하는 ‘오늘의 집회/시위’라는 홈페이지가 있다. 서울경찰청에 신고된 집회 내용을 장소와 인원 그리고 관할서를 일자별로 정리해서 올려놓고 있다. 9월 16일 토요일의 집회를 살펴보면 다양한 집회 신고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한강대로, 전통적인 서울의 중심지인 세종대로와 종로, 그리고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수만명이 참석하는 집회가 차로를 막고 진행되었다. 수만명이 거의 매 주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원인이라고 많은 이가 생각하지만 OECD가 최근 발표한 ‘정부 한눈에 보기 2023, Govern..
[리빙포인트] 여름 옷 세탁해서 보관하세요 조선일보 입력 2023.09.18. 03:00 여름 옷은 귀찮더라도 반드시 세탁해서 보관해야 한다. 땀이나 피지가 묻은 상태로 보관하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얼룩이 질 수 있다. 원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living/2023/09/18/P7A4IUBFGFHUXAEFQFCWAMP3UM/
♥80대 대통령 불가론 [만물상] 배성규 기자 입력 2023.09.17. 20:37 업데이트 2023.09.17. 23:55 중국의 태평성대를 연 요(堯)임금은 16세에 왕위에 올라 89세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선정(善政)으로 백성의 칭송을 받았지만 재위 70년을 넘기자 국정을 돌보기가 힘겨워졌다.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신하들도 무사안일에 빠졌다. 후계를 찾은 요임금은 젊고 능력과 덕망이 있는 순(舜)에게 섭정을 맡겼다. 순 임금은 100세 넘게까지 왕위에 있다 우(禹)에게 선위했다. 세 임금 모두 100세 안팎까지 재위했다. 물론 신화 시대 얘기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작년 96세로 사망할 때까지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71년간 왕위에 있었다. 태국 푸미폰 국왕도 2016년 사망 때 89세였다.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
장기 기증 10년만에 최저… 이식 대기자, 기증자의 122배 작년 기증자 405명… 대기자 5만명 조백건 기자 오주비 기자 입력 2023.09.15. 04:23 업데이트 2023.09.15. 06:44 간질성 폐질환을 앓는 A씨는 2018년부터 5년간 매일 3㎏ 무게의 산소통을 어깨에 메고 살고 있다. 양치질이나 세수를 해도 숨이 찬다. 산소통의 호스에 연결된 콧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폐 이식이다. 올해 첫 이식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뇌사자(기증자)의 폐 손상이 심해 이식을 받지 못하고 병원을 나와야만 했다. 그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장·폐·간 등 주요 장기(臟器)가 회복 불능으로 손상된 사람을 고통에서 건질 수 있는 길은 장기 이식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 기증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등..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카르텔의 수상한 커리큘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3.09.15. 03:00 11년 전 ‘KBS스페셜 정율성 편’ 심의 경험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물 조명에 놀라 숨어서 국가 흔드는 ‘교육 카르텔’ 곳곳 성업 중 우리는 이승만도 홍범도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어 일단 정치부터 떼어놓고 근·현대사 교육 새로 해야 내가 ‘정율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12년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KBS스페셜 정율성 편’을 심의할 때다.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정율성이라는 인물을 KBS가 정성 들여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제재 수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음악가를 다룬 프로그램의 실정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항..
[만물상] ‘100세 기부왕’의 못 이룬 노벨상 꿈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3.09.14. 22:04 업데이트 2023.09.15. 00:52 13일 별세한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임종 직전 남긴 말이 “관정 장학생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걸 보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평생 모은 재산 1조7000억원을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에 출연한 ‘기부왕’이었다. ▶1923년 경남 의령군 태생의 이 회장은 마산중학교 시절 일본인 학생들 틈에서 일제 지배를 경험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호기롭게 일본 메이지대 유학길에 올랐지만 일본 유학은 순탄치 않았다. 1944년 대학 2년을 수료하자마자 학병으로 끌려가 사선(死線)을 넘었다. 귀국 후 사업차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나라의 흥망성쇠가 과학기술에 달렸..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3.09.14. 03:00 총이 무서워서 미국에 가고 싶지 않다던 사람이 말했다. 이제 한국도 미국이 되었네. 뭐라고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다쳤고, 죽었다. 다치거나 죽지 않았어도 그곳에 있던 사람도 있다. 몸이 다치지 않았다고 다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쇼핑몰에서, 산책로에서, 사무실 밀집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 죽을 수 있다니. 이런 공포심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니다. 칼, 너클, 흉기, 괴한, 난동, 무차별, 범죄라는 단어로 무한 재생산되는 뉴스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
[만물상] ‘자유시’ 스보보드니 배성규 기자 입력 2023.09.13. 21:01 업데이트 2023.09.14. 01:22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912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면서 아무르주 내륙에 ‘알렉세옙스크’라는 도시를 세웠다. 황태자 알렉세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후 이곳을 점령한 볼셰비키는 도시 이름을 ‘스보보드니’로 바꿨다. 러시아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이다. 우리 독립군은 이곳을 ‘자유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스보보드니의 역사는 자유와 거리가 멀었다. 1921년 이곳에서 독립군이 소련 붉은 군대에 집단 학살되는 참변이 벌어졌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승리 후 일제의 강한 압박에 밀리던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자유시에 총집결했다. 하지만 소련은 독립군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했..
♥[만물상] 월터 아이작슨 김홍수 기자 입력 2023.09.11. 20:38 업데이트 2023.09.12. 09:31 미국 전기(傳記)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평전이 연일 화제다. 머스크의 큰아들이 지난해 여성으로 성전환 했고 엄마 성(姓)으로 바꿨다는 사실, 머스크가 “아들이 공산주의자가 됐다”고 한탄한 개인사가 공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인공위성 통신망)를 제공해 서방을 도왔던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을 막기 위해 스타링크를 한때 끊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머스크는 왜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작가에게 털어놓는 걸까. 앞서 아이작슨에게 평전 집필을 의뢰했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작슨은 사람들이 털어놓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감탄한 바 있다. 잡스는 2004년 암 판정을 ..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스마트폰 해킹 당하고 바보 되는 방법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3.09.12. 03:00 텔레그램 메시지 낯선 문자… 무심코 링크 눌렀다 해킹 당해 내 모든 연락처로 이상한 문자 전송, 결국 ‘민폐의 제왕’ 돼 휴대폰에 2400명 넘는 연락처… 꼭 필요한 건 몇이나 될까 어느 토요일 오후 전(前) 권투 세계 챔피언에게 “좋은 오후에요” 하고 문자가 왔다. 그와는 인터뷰하면서 단 한 번 만났을 뿐이고 그것도 10년 훌쩍 지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문자를 보내지 말란 법은 없지만 토요일 오후에 좋은 오후라는 평범한 인사 문자를 10여 년 만에 받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그 글귀가 ‘좋은 오후예요’가 아니라 ‘좋은 오후에요’인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맞춤법 틀리는 문자를 받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문자는 텔레그..
[최영미의 어떤 시] [137] 사랑 5 -결혼식의 사랑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3.09.11. 03:00 업데이트 2023.09.11. 05:25 사랑 5 -결혼식의 사랑 성체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칼을 든 군인이 따라가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케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흰 장갑을 든 신랑이 따라가면서 결혼 예식은 끝난다고 한다 모든 결혼에는 흰 장갑을 낀 제국주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김승희(1952~)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이 붙어있으나 실은 섬뜩하고 차가운 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본 정원’을 다녀온 날 밤에 김승희 시인은 이 시를 썼다. 그날 일본 정원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고 “그 흰 장갑에서 불현듯 차가운 파시즘의 냄새를 맡았다”고 시인은 설명한다.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을 ..
조선 시대 北서 여왕? [만물상] 이용수 논설위원 입력 2023.09.10. 20:31 업데이트 2023.09.11. 00:13 지난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열린 북한의 신형 잠수함 진수식에 뜻밖 인물이 등장했다. 군사와 무관한 최선희 외무상이 잠수함 갑판에 오르더니 샴페인 병을 선체에 부딪쳐 깨뜨렸다. 함정의 무사 운항을 기원하는 이런 의식은 통상 선주의 아내가 맡고 주요 함정은 여왕이나 퍼스트레이디 몫이다. 김정은이 참석한 ‘1호 행사’였으니 아내 리설주가 맡는 게 자연스러운데 최선희가 나섰다. ▶최선희 옆에선 현송월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인기 가수 출신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출세가도를 달린다.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 깊이 사귄 인연 덕분이라고 한다. 모란봉악단 단장, 당중앙위 후보위원, 삼지연 관현악단장을 거쳐 ..
현금수거책 중국 고교생... 재판 중 검사 구형 듣고 실신 신지인 기자 입력 2023.09.09. 16:29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으로 일한 10대 고등학생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학생은 법정에서 검사의 구형을 듣고 실신하기도 했다. 9일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김동진 판사는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 국적의 김모(18)군에게 벌금 29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도와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하고 피해자 A씨에게 현금 약 600만원을 편취했다. 지난해 3월 김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A씨의 딸이 납치된 것처럼 행세하며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이들은 딸의 전화번호로 발신번호를 변작해 A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은행에서 돈을 찾고 있으면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김씨는 오후 5시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백화점 매장 앞에서..
[모던 경성]백석이 사랑한 ‘여름의 총아’ 맥고모자 [뉴스라이브러리속 모던 경성]파나마 모자와 함께 인기, 모던 보이들의 여름 패션 소품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3.09.09. 06:00 ‘여름!여름! 벌써 여름이다. 거리에는 맥고모자 쓴 사람들과 ‘파라솔’(여름우산)든 부인들의 왕래가 잦으니 바야흐로 맥고모자의 시절이오, ‘파라솔’의 시절이다.’(‘初夏가두풍경’, 조선일보 1930년5월9일) 100년 전 ‘맥고모자’는 여름의 대명사로 통했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이런 기사가 종종 실렸다.’비가 개이고 한 이틀 동안 바람이 불고나서는 날이 훨씬 풀리어 완연 여름날이 되었다 ▲어색해보이던 흰 구두며 맥고모자도 조금도 어색한 빛이 없이 아주 서늘해 보인다 ▲역시 이것도 때가 온 것을 말하는 것인데 때를 맞춰야할 것은 흰 구두에 맥고모자뿐이 아니라…'(‘..
덴마크판 퀴리 가문의 100년 집념, 위고비 낳다 루이비통 시총 제친 노보노디스크 김효인 기자 입력 2023.09.09. 03:00 업데이트 2023.09.09. 06:44 1920년 모세혈관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는 1922년 아내 마리와 함께 미국 동부 순회 강연을 떠났다. 남편만큼 유명한 의사였지만 당뇨병 환자였던 마리는 여행 중 크로그에게 “인슐린을 처음으로 추출해낸 캐나다 토론토대의 프레더릭 밴팅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세 사람의 만남은 다음 해 덴마크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당뇨 환자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인슐린 특허권을 단돈 1달러 50센트에 토론토대에 넘긴 밴팅은 크로그 부부에게도 돈을 받는 대신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인류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
제주에 9살 아들 버리고 간 중국인, 편지엔 “좋은 시설서 지내길” 문지연 기자 입력 2023.09.08. 11:00 업데이트 2023.09.08. 11:35 제주 한 공원에 9살 어린 아들을 유기한 30대 중국인 남성이 검찰에 넘겨졌다. 그는 ‘한국의 좋은 시설에서 생활하길 바란다’는 편지를 아들 곁에 둔 채 사라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경찰청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중국 국적의 30대 남성 A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6시쯤 제주 서귀포시의 한 공원에 잠든 아들 B(9)군을 내버려 두고 사라진 혐의를 받는다. 당시 잠에서 깬 B군이 울면서 아빠를 찾자, 이 모습을 본 서귀포시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경찰은 주변 CCTV를 분석해 이튿날 A씨를 긴급체포했다. 조사 결과 A씨는 같은 달 14일 관광 목적으로..
♥[만물상] 93세 박사 도전 배성규 기자 입력 2023.09.08. 03:08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양연(梁淵)은 젊은 시절 책을 멀리하다 불혹(40세)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대가(大家)가 되기 전엔 절대 손을 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훗날 과거에 급제한 양연이 손을 펴보니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조갑천장(爪甲穿掌)’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효종 때 김득신은 조선의 대표적 만학도로 회갑이 다 된 59세 때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80세로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기(史記)는 몇 번 읽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충북 증평군엔 그의 만학 정신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다. ▶대만의 자우무허(趙慕鶴)씨는 85세에 손자와 함께 공부를 시작해 대학생이 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비만 치료제인데 심혈관·치매에도 효과… 전세계 ‘위고비 신드롬’ 판 커진 비만 치료제 시장 김효인 기자 황규락 기자 입력 2023.09.08. 03:00 업데이트 2023.09.08. 06:21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용하면서 ‘게으른 부자들의 살 빼는 약’으로 불리던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심혈관을 비롯한 각종 대사 질환과 난치병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몸값이 치솟고 있다. 술·담배는 물론 마약 사용에 대한 욕구까지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만병 통치약’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위고비의 인기로 비만이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도 속속 신약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위고비와 비슷한 효..